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스페인의 매력
회화의 메카 마드리드
건축의 메카 바르셀로나
생전에 더 이상 못 볼
뜨겁고 깊은 예술의 향연
스페인은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로 손꼽힌다. 스페인의 매력은 무얼까. 스페인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용광로다. 유럽 대륙의 끝이었으나 비옥한 토지와 대규모 은광산이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고 그만큼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서 살았다. 아프리카 대륙과 가까이 있다 보니 오랜 세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여 다른 나라에 비해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양성의 용광로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도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북쪽으로 이어진 순례자의 길, 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도보 종주를 스페인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라 추천한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꼬박 한 달 이상을 내리 걷기만 해야 하는 고된 길이지만 이 순례는 성취의 희열 속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값진 체험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남쪽 안달루시아 지역을 스페인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다. 그라나다, 말라가, 세비야, 론다 등 신비감마저 감도는 유서 깊은 도시들에는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시절의 이슬람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 “이곳이 유럽 맞아?”라고 자문할 만큼 별천지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그라나다가 자랑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는 이름난 휴양지이기도 하고, 플라멩고의 본고장 세비야와 절벽 위의 도시 론다는 투우도 즐길 수 있는 관광의 명소다.
하지만 스페인을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다. 중부 내륙의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정치 행정의 중심지로 스페인 황금시대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의 북동쪽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는 강한 민족의식으로 독립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들 두 도시 간의 경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것이 가장 첨예하게 표출되는 건 축구 경기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엘 클라시코라고 불리는데 승패에 따라 그날 도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정도다.
이들 두 도시가 있어서 스페인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힌다. 두 지역은 각기 회화와 건축 분야에서 스페인 예술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두 지역을 차례로 찾아가면서 스페인이 선사하는 멋진 예술 여행을 즐겨보자.
마드리드의 ‘골든트라이앵글’
먼저 마드리드다. 스페인 왕궁과 여러 광장이 펼쳐진 마드리드 중심가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다.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왕비 국립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삼각형 모양으로 위치해 사람들은 이를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그 중 가장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관광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더불어 가장 수준 높은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프라도 미술관은 중세의 그림부터 티치아노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과 이후 엘 그레코를 시작으로 루벤스, 반 다이크 등 북유럽 거장들은 물론 스페인 미술의 황금 시기를 장식한 바로크 시대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그림 중 ‘시녀들’을 비롯한 벨라스케스의 그림과 그의 제자였던 고야의 그림들을 꼭 챙겨서 만나자.
오래된 궁전 건물과 세련된 현대식 관리동으로 이뤄진 소피아 왕비 국립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전시한다. 피카소, 달리, 미로 등 스페인 미술을 자랑하는 거장들과 이들 외의 여러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인기를 누리는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정권을 돕기 위해 자행된 독일군 공습의 참상을 고발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이어 세계 2위의 개인 컬렉션으로 손꼽히는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는 고전 작품들과 현대 작품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중세 시대의 걸작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은 물론 인상주의 회화를 비롯해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대가들의 작품이 800여 점이나 전시돼 있다. 이중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와 한스 홀바인의 ‘헨리 8세 초상’은 놓쳐서는 안 되는 걸작이다.
중심가에 위치한 이들 미술관 외에도 마드리드는 그 주변 지역에 여러 예술 여행의 명소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은 남쪽에 위치한 톨레도다. 한 때 스페인의 수도이기도 했던 톨레도는 지금도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다. 웅장한 요새인 알카사르와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을 자랑하는 톨레도는 화가 엘 그레코의 도시이기도 하다.
가우디의 매력에 빠지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베네치아,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서 활동한 16세기 후반의 거장이다. 그는 비잔틴 회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지중해 전역을 다니며 당대 최고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서 그림을 배운 뒤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완성했다. 그는 원색의 화려함을 자랑하며 철학적 깊이와 영적인 충만함을 뿜어내는 종교화를 주로 그렸는데 톨레도는 이러한 그의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먼저 톨레도 대성당으로 가보자. 이곳은 이사벨라 여왕의 왕관이나 프랑스의 성왕 루이가 기증한 삽화 성경, 스페인 최고의 보물인 성체현시대 등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제의실에서는 엘 그레코의 ‘옷이 벗겨지는 예수’를 비롯해 여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티치아노의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상’도 이곳에서 놓칠 수 없는 걸작이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토 토메 예배당에는 엘 그레코를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전시돼 있다. 생생한 인물 묘사, 지상과 천상의 선명한 대비,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신비로움으로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그림이 되었다.
그 외에도 산토 토메 예배당에서 길을 따라 내려와 만나게 되는 엘 그레코 박물관과 톨레도 초입에 위치한 산타 크루즈 미술관에서도 엘 그레코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엔 마드리드 북서쪽으로 가보자. 그 곳에는 스페인 최고의 전성기 시대를 다스렸던 펠리페 2세가 지은 궁전 엘 에스코리알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엘 그레코의 작품은 물론 이탈리아에서 초빙해 온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이 이 궁전을 빛내고 있다.
마드리드가 스페인 회화의 메카라면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건축의 메카다. 바르셀로나를 이렇듯 세계적인 건축의 도시로 만든 사람은 바로 가우디다. 바르셀로나 인근 레우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가우디는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와서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았다. 평범한 건축을 거부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적인 건축을 선보인 그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많은 건축물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우선 바르셀로나 중심가에 위치한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가 유명하다. 카사 밀라는 공동 주택으로 지어졌으며 물결치는 듯한 외관과 사람을 연상시키는 굴뚝이 특징이다. 돌을 깎아 만든 외벽 장식은 마치 채석장 같은 느낌을 풍긴다. 카사 밀라가 산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면 직물업자 바트요를 위해 지은 카사 바트요는 바다를 테마로 지어졌다. 집안 곳곳에 곡선의 구조가 사용됐고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타일들이 모여 바다 생태계를 표현하며 외벽과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타일의 강렬한 원색은 밤에 조명을 받으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한 구엘 공원
가우디의 위대함은 바르셀로나시 북쪽에 위치한 구엘 공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에 의해 대규모 주택 단지로 조성됐던 이곳은 분양에 실패하면서 공원으로 남았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공원 곳곳에 자연을 테마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한 이 공원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단연 성가족 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금도 짓고 있는 이 성당은 가우디 평생의 역작이다. 옥수수를 연상시키는 종탑들이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3면의 파사드는 각기 다른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탄생, 영광, 수난의 주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기괴함마저 느끼게 하는 외관과는 달리 이 성당의 실내는 밝은 색조로 숲에 온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나무를 형상화한 높은 기둥들과 화려한 천정 장식은 보는 이들의 넋을 빼앗는다. 성인들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성당의 지하에는 가우디의 무덤이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건축 외에도 매력적인 미술관들이 있다. 우선 피카소 미술관과 후안 미로 미술관이 시내에 있고 시 외곽 북쪽 피게레스에는 달리 미술관이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볼 때 마드리드는 고전미술에, 바르셀로나는 현대미술에 강점이 있다.
이 외에도 고대 로마의 수도교를 자랑하는 세고비아와 멋진 외관을 자랑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이름난 빌바오를 비롯해 스페인 여러 도시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짧은 지면으로 스페인의 매력을 다 둘러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스페인은 이처럼 예술을 테마로 둘러보기에도 매력이 넘치는 나라다. 스페인 예술에 깊이 빠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