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후 첫 수요시위… 1000여 명 참석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은 ‘졸속 합의’”

“피해자 상처 입히고 전시 성폭력 해결 가로막아”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고등학생들이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고등학생들이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년간 싸웠는데도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믿었던 한국 정부는 왜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두 번, 세 번 죽입니까? 먼저 하늘나라로 간 238명의 한을 풀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가 가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겁니다.”

단상을 내려간 이용수(8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협상 타결을 선언한 후 지난해 12월 28일 열린 첫 수요시위는 분노와 눈물로 가득 찼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청년, 시민사회단체 등은 한·일 정부를 비판하며, 전시 성폭력 문제의 올바른 해결과 사회적 연대를 촉구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는 1000여 명(경찰 추산 700명)이 모였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길원옥(87) 할머니, 시위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해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참석했다. 고등학생, 임신부 등 일반인과 외국인들도 각양각색의 손팻말을 들고 함께했다.

이날 시위는 올해 별세한 고 황선순, 박○○, 이효순,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최금선, 박유년, 최갑순 할머니 등 9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고 이효순 할머니의 아들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나를 잊지 말고 내 원한이 풀릴 때까지 싸워서 이겨달라’고 하셨지요. 약속합니다. 편히 쉬세요 어머니.”

숙연한 추모제는 곧이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의 장으로 바뀌었다. 추모사에서 고등학생, 청년 활동가, 종교·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번 한·일 정부의 ‘졸속 합의’는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줬을 뿐만 아니라,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것”이라며 성토했다.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석자가 소녀상 이전 반대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석자가 '소녀상 이전 반대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211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소속 이정은 학생은 “할머니들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이자 전시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존재”라며 “다음 시대의 주인공인 우리가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진실 규명, 법적 배상 등이 이뤄지고 역사 교과서에도 기록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모임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김샘 대표도 “28일 회담 결과를 듣고 2년간 매주 수요시위에 나왔던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25년간 싸우신 할머니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라며 “할머니들의 싸움에 대학생들이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 등의 발언을 듣던 참석자들도 함께 분노하고 피해자에 대한 연대를 표했다. 임신 4개월째라는 주부 김송이(31)씨는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랄 나라가 이렇게 부끄러운 과오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이런 역사를 남겨줄 수 없다”며 “언젠가 위안부 문제도 해결될 날이 올 거라고 믿고만 있었지, 행동하지 않았다. 반성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알려 나가는 데 동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온 교환학생인 코넬리아 슈미트(24)씨는 “기사를 읽고, 피해자들을 지지하고자 시위에 참석했다”며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필요한 건 진정성 있는 사죄다. 단 피해자들이 고령이므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세계행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미국·유럽·아시아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하는 연대체를 만들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내 시민사회·전문가·시민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고, 전국 각지의 평화비 앞에서 매주 릴레이 수요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슬퍼하고 기억하는 수동적 추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행동 속에서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나가자. 피해자의 아픔이 외면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자”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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