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 지방선거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알자지라 뉴스 방송화면 캡처 ⓒaljazeera.com
지난 12일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 지방선거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알자지라 뉴스 방송화면 캡처 ⓒaljazeera.com

시끄러운 한 해가 지나간다. ‘시끄러움’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발전하는 소리였는지, 퇴보하는 소리였는지, 탁한 소음이었는지, 집중의 백색소음이었는지도 애매하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해에 걸어야 하는 기대와 의지만이 소중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감동할 만한 뉴스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투표권이었다. 우리나라는 1947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프랑스가 1944년에 허락한 일이니 우리나라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투표권이 주어졌다고 해서 여성이 삶의 질이 급속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50년대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60년대부터 여성들이 조금씩 대학의 문을 열고 교육이라는 호흡을 시작하면서 부분적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60년대도 여성 인권은 바닥이었다. 나는 60년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운좋게 취직을 했다. 여성의 위치는 거의 경악할 정도로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남자 직원이 “미스 신, 담배 사와”라는 개인 신부름은 예사였고 일상적이었다.

어깨와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미스 신, 오늘 억시기 예쁘다”라고 징그러운 장난을 쳐도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이미 시인이었고 대학 졸업자였다. 그 모욕감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저녁 밥값조차 없었지만 나는 “이젠 담배는 직접 사세요” 한마디 하고 그날로 직장을 그만두고 보수 없는 대학 조교를 시작했다. 그것이 내 미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지금은 2015년 12월이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이제 없는 것인가. 다만 능력을 묻는 오늘의 실정에서 그런대로 양성평등은 제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양성평등이 아니라 여성이 훨씬 윗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월급 통장을 아내가 관리한다고 해서 여성의 위치가 완전 변해 인권이 올바르게 섰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건 다른 이야기다. 이런 세계적인 물결에서 어긋나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이 투표권을 얻게 되고 미미한 숫자지만 1%의 의미 있는 출발을 하게 됐다. 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고 신분증을 받으려면 보호자나 고용주 허가가 필요한 나라에서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도 할 수 없는 나라에서 1%의 진출은 막강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제하고 억눌려 온 그 나라 여성들의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지만 그녀들이 손에 쥔 휴대폰을 보라. 그들은 모두 세상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난생 처음 투표를 하고 울음을 터트린 여성들의 가슴은 “변화가 왔다”고 울부짓는다.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었다. 여성들은 저마다 정신적 영웅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한다. 몸속 자궁은 정신의 자궁까지 움직인다. 그들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와 손잡고 개인의 인간적 행복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