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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여자대학은 과연 필요한가’라는 주

제로 토론이 열려 관심을 모았다. 특히 여대들이 나름대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점을 맞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발맞춰 더욱 관심이 집중되

는 자리였다.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주최로 5월 25∼26 양일간 개최된 '여성적

가치의 지성공동체' 학술회의에서는 미국의 Wellesley대 페기 매킨토

쉬 교수, 일본 방송(放送)대 히로코 하라 교수 등 세계의 유명 여성학

자들이 참석해 여성학과 여자대학의 미래에 대해 전지구적인 토론을

벌였다. 남녀공학에도 여성들이 어렵지 않게 입학하는 지금, 여자대학

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여성의 경험과 현실을 반영한 여성주의적 교

육프로그램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이 학술회의는 ‘여성적 가치’와 ‘지성공동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여자대학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의미, 즉 보수적인

여성교육의 본거지라는 점과 여성주의적인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상반성 속에서 앞으로 여자대학의 비전과 사명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21세기 여자대학의 미래: 이중전략에서 양면전략으로’란 제목으로

발표한 김혜숙 이대 철학과 교수는 점차 순수한 지식 추구에서 실용적

인 기능으로 변모해 가는 대학의 특성을 지적하면서 현재 28개로 줄어

든 미국 여대의 예를 들었다. 1960년대에 190개에 달하던 미국 내의

가톨릭계 여대들은 남자들만 입학을 허가하던 대학들이 여자를 받아들

이면서 현격히 줄어든 입학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남녀공학의 교육프

로그램과 별로 차별화되지 않았던 교육방식 대신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노력으로 미국의 여대들은 평생교육,

주말 교육 등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 재정적 원조, 탁아, 기타 필요

한 후원까지 제공해 주는 계속 교육’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내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여자대학들이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

다. 여자대학에서의 교육은 단순한 여성용 교육이 아니라 ‘여성을 위

한 여성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캔사스대 교육학과 리사 울프-웬델 교수는 미국의

선례를 좀더 소상히 전했다. 남자대학과 여자대학이 남녀공학으로 전

환했던 중요한 요인은 교육적인 문제보다는 “만약 우리가 남학생(혹

은 여학생)을 받아들인다면 등록생 수와 기부금 면에서 형편이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재정적인 문제였으며 이런 점에서 ‘남녀공학이 되

는 것’은 여자대학보다는 남자대학에게 더 쉽고 수지맞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남자대학은 기존의 구조를 많이 변화시키지 않고 여학생들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여자대학들은 이전에 여자대학이었다는 낙

인을 극복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남자들이 여자대학에

가겠는가?”라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경우, 아직도 미국의 여대 감소율에 비하면 많은 여자대학들

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부터 남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여자

를 대상으로 한 교육의 내용이 달랐고 아직도 딸을 둔 많은 학부모들

이 여자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여자대학이 자존

을 위한 노력을 확고히 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조형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석한다. 98년까지 한국의 154개 4년제 대학 1백47만7천 여명

의 재학생 중 51만2천519명이 여학생으로 34.9%를 차지했으며 4년제

여자대학은 현재 전국에 7개가 있다. 지난 5, 6년 사이에 이미 상명여

대, 성심여대, 효성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것을 볼 때 한국의 여

자대학도 과연 몇개가 여자만의 대학으로 남을 것인지 많은 사람이 의

구심을 품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역시 ‘여자대학의 정체성’

을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여자대학의 미래 : 민족과 인류의 어머니를 키우는 지성 공동체’란

제목으로 발표한 조무석 숙명여대 영문학과 교수는 숙대의 사례를 들

어 여자대학이 추구해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조선 말 황실

에서 세운 학교이니만큼 보수성이 짙었던 숙명여대는 계속해서 남성

총장들이 운영하는 동안 더욱 보수적인 교육이 행해져 왔었지만 13대

이경숙 여성총장이 취임하면서 큰 변모를 했다.

현모양처를 지향해온 그 동안의 교육이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전문직

여성과 여성 지도자 양성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지게 됐으며 기존의 패

러다임을 깨뜨리기 위해 “울어라 암탉아” 등의 구호와 “나와라 여

자 대통령”, “여자가 커야 대한민국이 큽니다” 등의 광고카피로 여

고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유아교육학과 양옥승 교수는 여자대학 교육의 대안으로

‘전통적인 교육이념과 목적을 새로이 설정하고, 이에 부합된 교육과

정을 탐구한다’, ‘평생교육기관의 기능을 수행한다’, ‘여성화된 가

치와 지식 체계를 구성하고 확산시킬 수 있도록 대학간에 연대하여 새

로운 연구 방법론을 모색한다’ 등 몇 가지 방향을 제안했다.

'이신 지영 기자 skyo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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