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 팀장

4년에 4500만원 오른 전셋집 포기

다세대 빌라 구입‚ 에너지 하우스로 개조

단열재·창호·수도 공사… 에너지 81% 절약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이 에코 하우스로 꾸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택 거실에 앉아있다. 단열과 창호 공사를 진행해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으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이 에코 하우스로 꾸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택 거실에 앉아있다. 단열과 창호 공사를 진행해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으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친구네 고양이의 흔적이 새겨진 소파에 앉아, 또 다른 친구가 준 테이블 위에서 글을 쓰며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많은 나날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들로 직조되기를, 필요를 주장하기에 앞서 되짚어 보고, 얼굴이 있는 교환 속에서 다른 방식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기를 꿈꿨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꿈꾸는 고금숙(38)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은 지난 2013년 5월 집을 샀다. 4년 만에 4500만원이나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고 팀장은 “차라리 집을 사자” 마음먹었고, 친구와 공동 주거 형태로 각자 1억원을 투자해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23년 된 다세대 주택에 둥지를 틀었다.

재개발되지 않을 곳, 신축 빌라는 사양, 방마다 빛이 골고루 들어올 것, 맞바람이 솔솔 통할 것,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이 없을 것, 시장과 도서관이 가까이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한강공원이 지척인 곳. 고 팀장은 그런 집을 찾아다녔다.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는 갖가지 원칙을 세워 놓고 실천한 덕분에 서울에서 궁상 떨지 않고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뤘다.

 

고금숙 팀장은 작은 방 외벽에 지방에서 직접 공수한 왕겨숯(훈탄)을 넣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금숙 팀장은 작은 방 외벽에 지방에서 직접 공수한 왕겨숯(훈탄)을 넣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합정동 다세대 주택에 전세로 살았다. 집을 너무 엉망으로 지어서 한 달 가스비가 15만원인데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서러웠다. 2년이 지나자 2000만원을 올려달라더라. 2년 후에는 또 2500만원을 올렸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집값이었다. 월세도 문제다. 월세를 내기 시작하면 개미지옥이다. 미래를 담보하는 개미지옥. 아무리 아껴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셰어하우스를 고민해오던 친구와 ‘서로 잘 돌봐주자’는 약속을 하고 집을 샀다. 서울에서 살려면 자립할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뤘지만, 갈 길은 멀고 험했다. 자신이 살 집을 ‘친환경 하우스’로 고쳐 보리라 마음먹었기 때문. 초절수형 변기를 사려고 을지로 4가를 몇 번이나 뒤지고, 볼일 볼 때마다 수고로움을 보태야 하는 수도시설도 시공했다. 단열과 창호 공사에 엄청난 돈을 쓴 덕분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은 착해졌다. 그러나 예산 부족, 제도 미비, 잔혹한 시장 논리 따위로 포기와 타협을 거쳐 ‘적당’ 기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고 팀장은 자신의 경험담을 『망원동 에코 하우스』(이후출판사)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에코 마일리지를 확인해보니 전 주인에 비해 81%를 절약했더라. 절수, 단열재, 창호 공사 등에 1500만원이 들었다. 어머니가 “그 많은 공사비가 다 어디 쓰였냐”고 하시더라(웃음). 겉으로 보기에 하나도 티가 안 나는 리모델링이다. 작은 방 외벽에는 왕겨숯(훈탄)을 넣었다. 말하지 않으면 벽이 어떻게 바뀐 지 누가 알겠나(웃음). 보통 리모델링을 하면 제일 처음 뜯겨 나가는 게 싱크대다. 그다음이 변기. 별로 더럽지 않고, 리폼할 수 있어도 바꾼다. 나는 단열재와 창호, 보일러 등에 집중했다. 싱크대나 문짝 등 기능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대로 뒀다.”

그는 천편일률적인 리모델링을 지양하고, 조금 힘들긴 해도 ‘자기다운 자재’를 골라 실용적이고 구조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집을 만들었다. “지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환경주의자의 원칙은 하나씩 현실이 됐다. 싱크대와 세면대 헹굼 물을 받아 내 재사용하고, 왕겨 숯 단열재를 벽지 안에 숨기고, 모든 조명은 LED 전구로 바꾸었다. 조명 탓인지 고 팀장이 꾸린 ‘망원동 에코 하우스’는 아늑했다. 에너지 절약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안타깝지 않은지 묻자 그는 “제도가 안타깝다”고 답했다.

 

수도와 단열재, 창호, 보일러 등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고금숙 팀장.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망원동 에코 하우스』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도와 단열재, 창호, 보일러 등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고금숙 팀장.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망원동 에코 하우스』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면기나 변기에 중수도 장치를 달아 절수에 효과적인 제품이 있다. 시장에 정형화된 물건이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판로가 없어서 팔지 못하더라. 그런 식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망해버린 곳이 많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다. 요즘 아파트는 단열재 규제를 잘 지킨다. 그러나 원룸, 고시원, 빌라 등은 그런 규제가 지켜지지 않는다. 집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기 때문에, 가장 싼 자재를 쓴다. 한번 장착해놓으면 살기도 편하고, 에너지도 아끼고, 유지비도 적게 들지만, 집을 상품으로 보는 한 근절이 안 된다.”

고 팀장은 본인도, 도시도, 지구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도시인’이다. 그는 자신을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의 주요 원인이면서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몰려드는 도시를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라 말했다. 늘 도시와 생태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낸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쓰는 그를 건물 이웃이 쓰레기 무단 투기자 취급을 하는 바람에, 동네 반상회에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요새는 뭐가 많아서 문제다. 뺄셈으로 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뺄셈의 인테리어’가 필요하다. ‘심플라이프’는 명상하듯 하는 게 아니다. 물건을 줄이는 삶이다. 자기 삶을 정리하는 게 핵심이다. 요즘은 뭐든지 과잉이라서 문제다. 정말 자기한테 의미 있는 것 중에서 한두 가지로 꾸미는 것에 의미를 두면 어떨까. 물건 자체가 아니라 경험과 시간으로 채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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