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저녁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주노총, 전농 등 참가단체들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규탄하고 청년실업, 쌀값 폭락, 빈민 문제 등의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월 14일 저녁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주노총, 전농 등 참가단체들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규탄하고 청년실업, 쌀값 폭락, 빈민 문제 등의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진료실에 환자가 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증상은 과거에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주 중요한 약속일수록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환자 본인은 전혀 없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본인은 정작 중요하게 기억해내지 않는다.

기억을 상기시켜줘도 과거에 한 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에 주변 사람들은 폭발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어릴 적 옛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본인이 더 화를 내고 있다. 만일 환자가 나이가 있다면 의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치매 혹은 유사치매다. 아니면 거짓말쟁이, 반사회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다음 비슷한 환자가 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증상은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금방 확인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부끄럼없이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거짓말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뿐 아니라 거짓말의 강도와 수위가 더 높아지고, 마치 자신이 말한 거짓말을 사실처럼 여기고, 울고불고, 자신이 가장 진실한 사람인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새로 만난 사람들,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사람의 이 가짜 진실에 속을 수밖에 없도록 연기도 잘했다. 이런 사람들의 진단은 무엇일까? 그 거짓말을 폭로하면 남의 일처럼 대했다.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행동이 가능할까?

1891년 의료 문헌에서 안톤 델브뤼크라는 의사에 의해 개념화된 ‘공상허언증’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허구적인 사실과 정황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스스로 믿고, 그 허구에 따라 행동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과정을 반복해 정말 자신이 그 안에 갇혀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거짓을 말해버리고, 그 거짓을 신념화하면서 진실을 없애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이전에 알던 사람들은 그의 거짓을 금세 알 수 있지만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행동할 수도 있다.

정말 기억을 못한다면 치매이고, 거짓을 진실처럼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공상허언증이고 그것도 아니라 모든 걸 기억하고,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내 이익을 위해 힘이 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라면 반사회적인 사람이다.

반사회적인 사람들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반성할 줄 모른다는 데 있고, 그들의 행동에 따른 결과에 대한 감정이입도 없고, 그들의 고통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지 못하는 데서 올 뿐이다. 또 그들은 자신을 벗어난 관점과 시각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공감맹’이다. 다른 사람이 제기하는 문제가 이익에 손해를 끼친다면 갑자기 눈이 가려져 이해력이 제로가 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갖게 되면 더 많은 진실을 보지 않기 마련이다. 차라리 치매가 일찍 오고 공상허언증이라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면 한편으로 다행이다. 그런데 망각과 거짓말이 반사회적인 것이라면 속고 있을 뿐이며, 그들의 이익을 위해 수탈과 착취를 당하고 있을 뿐이다.

2015년에도 망각과 거짓의 향연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사실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어느 저자의 신간 제목처럼, 지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여러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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