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양성평등 국가포럼’ 개최

정치·가족·과학기술의 젠더 혁신 방안 모색 

 

18일 서울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양성평등 국가포럼에 참석한 패널과 토론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 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토론 진행은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은재 건국대 교수, 이홍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미영 국민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8일 서울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양성평등 국가포럼에 참석한 패널과 토론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 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토론 진행은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은재 건국대 교수, 이홍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미영 국민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신문은 함께 18일 서울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혁신이슈 발제를 주제로 ‘양성평등 국가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20주년과 양성평등기본법 시행 원년을 맞아 성인지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고 정치·가족·과학기술 등 각 분야에서 양성평등을 통한 미래혁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은 양성평등을 위한 혁신이슈 발제, 창조정치의 탐색, 가족정책에서의 젠더혁신, 성 다양성을 통해 달성하는 과학기술 혁신 순으로 진행됐다. 이후 지정토론 ‘여성 리더의 시대를 꿈꾸며’ ‘가족정책에서의 젠더혁신’ 발제에 이어 자유토론을 했다.

이번 포럼에는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이 참석해 각각 정치·가족정책·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젠더혁신을 주제로 발제했다. 지정토론자로는 이은재 건국대 교수, 안미영 국민대 교수, 이홍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참여했다. 토론 진행은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 맡았다.

 

<주제발표>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 - ‘창조정치’의 탐색

여성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사회는 남녀 임금격차 37%, 성권한척도 117위,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 등을 보면 불평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성별 불평등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고 작동되는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봤다. 법적 측면에서 성평등이 국가정책의 핵심 가치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조약법에 ‘성평등의 실현은 공동체가 수행해야 할 과업(공동체의 목표)’이고, ‘공동체가 시행하는 모든 활동에 있어서 평등의 구현과 불평등의 제거가 주요 목표가 돼야 한다(성주류화)’고 명시하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선 성평등 정책의 기반이 되는 성평등 가치 인식이 미약하다. 여성정책 이해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젠더 통합적 사고는 늘 이해의 장벽에 부딪힌다. 예산 측면에서도 저출산·고령사회, 양극화 환경에서 삶의 질 향상 전략으로 아동과 여성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은 여전히 적다.

최근 남성 정치인들의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인지 되돌아보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해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성평등한 사회이며, 할당제라는 억지를 바라는 사람은 수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8월 한 토론회에서 “정신 차려라. 모두 여성들 책임이다. 떼쓰지 말고 스스로 개발하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여성의 낮은 대표성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발언했다. 또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에는 저출산 문제 당사자인 여성은 빠진 채 남성 고위급 인사들만 참석했다.

한국 정치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유럽의회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여성이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 여성이 보이지 않으며, 정치개혁 논의 과정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성차별 문제가 해결됐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할당제도 자연스럽지 않은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통계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계 없인 정책도 없다(No Data, No Policy). 논의 구조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남녀평등최고회의에 참여하는 60명은 남녀 동수이며, 상하원 의원, 여성단체 대표, 노동조합, 전문직, 언론인, 여성 관련 전문가, 관련 부처 국장 등으로 구성된다. 한국 사회가 정책 수립에 있어 어떤 논의 구조를 통해 결과를 도출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제도화다. 1997년 프랑스의 여성 정치참여율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2013년 기준 프랑스의 하원 여성 비율은 26.9%, 한국은 15%로 격차가 벌어졌다. 프랑스는 동수내각을 구성한 후 남녀평등기본법을 제정했다. 대통령이 여성권리 정책을 정치적 우선 과제로 채택하면서 각 부처 장관들도 관련 정책을 직접 챙긴다. 프랑스 양성평등 정책은 자율적, 규칙적, 자동제어장치처럼 작동되도록 설계됐다. 프랑스의 동수내각과 시스템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위기대응의 산물에 더 가깝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가족정책에서의 젠더 혁신

남성과 가족으로 가족정책 대상 넓혀야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족과 가족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부부+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 감소하고 있다. 2010년만 해도 ‘부부+자녀’로 이뤄진 가구 형태가 가장 많았지만 2035년에는 1인가구가 34.3%로 가장 많은 유형이 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초혼연령은 2014년 여성은 29.8세, 남성 32.4세로 늦어지고 있다. 맞벌이 가구는 40% 이상이며, 1인가구는 2010년 24%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부모 가구 수도 전체 가구의 9.7% 수준이다.

가족 관계의 변화에선 성별 차이가 드러난다. 2008~2014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배우자와의 관계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은 5점 만점에서 4점대였으나 여성은 3.6점대로 만족도가 떨어졌다. 사회는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가족 관계에 있어서는 변화가 더디다는 뜻이다. 국제결혼, 동거, 사실혼 관계 출산 등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허용도가 높아지는 등 가족 가치관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에선 사실혼 관계에서 출산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실제로 사실혼 관계 허용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남성 육아휴직과 남성할당제, 장시간 노동, 남녀고용 평등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지난해 수행한 여성가족부의 ‘남성의 일·가정 양립 현황과 개선 방안’ 결과에서 남성들이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평일 기준 1.65시간에 그쳤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34.4%로 가장 많았다. 법정 제도인 육아휴직이 실제 회사에선 남성은 사용할 수 없는 제도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다. 유럽연합(EU)은 남성할당제를 휴가제도에 도입된 가장 명시적인 성평등 조치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할당제를 도입한 국가 대부분이 제도 시행 이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늘었다. 2000년 제도를 도입한 아이슬란드는 도입 당시 5%에도 미치지 못하던 사용률이 5년 후 30%를 훌쩍 넘어섰다. 남성 할당제가 안착한 국가의 제도 특징을 보면, 비양도성 개별적 권리이며 사용하지 않으면 상실되고, 임금 대체율이 높았다.

하지만 여성과 노동시장 중심의 일·가정 양립 정책은 한계가 있다. 정책 대상을 여성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확대하고, 남성 육아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 장시간 근로 문화의 개선 등 직장 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결국 젠더 관점과 가족 관점에서 일·가정 양립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 관련 예산을 살펴보면 대부분 아이돌봄 지원(31.5%), 한부모 가족 지원(31.4%), 다문화 가족 지원(24.8%)에 투입된다. 세 정책은 자녀 양육 지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취약·위기 가족을 중심으로 한 대상별 접근 방식에서 보편적인 부문에서 가족 지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의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노동시장 중심으로 구성된 정책 범주와 대상을 남성과 가족으로 확대해 양성평등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가족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가족정책에도 젠더혁신이 필요하다. 유자녀 가족 지원과 성평등한 자녀 양육 환경 조성을 통해 ‘독박’ 육아가 아닌 평등 육아, 노동시간과 가족 시간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 성 다양성을 통해 달성하는 과학기술 혁신

과학기술 정책에도 ‘성 주류화’가 필요하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젠더혁신’이란, 개인과 문화, 과학, 공학의 영역에서 젠더 편견을 제거함으로써 과학기술 및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혁신을 의미한다. 즉, 젠더 편견을 극복해 더 나은 과학기술을 만들고 나아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젠더 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사례는 많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서 약품 10종이 퇴출됐는데, 이 가운데 8종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부작용을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동물실험과  임상실험 때 암컷이나 여성을 배제하고 수컷 혹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또 1990년대까지 유럽의 모든 차는 남성의 평균 신체 사이즈 통계를 이용해 설계됐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위험했다. 골다공증은 전통적으로 폐경기 여성에게 발생하는 질병으로 분류된다. 과학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차별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젠더혁신이다.

연구개발 주체인 여성과 남성의 참여 비율도 젠더 혁신의 키워드다. LG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여성 고용 단절에 의한 국내총생산(GDP) 손실 추정액은 전체 GDP의 4.9%에 달한다. 이는 더 많은 여성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참여한다면 과학기술 분야를 이끄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과학기술은 무엇보다 창의성이 중요한데 창의성의 핵심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지닌 집단은 고정관념이 적어 보다 복잡하고 비정형화된 과학기술 문제 해결에 적합하다. 아프리카 우물 개발에 지역을 잘 아는 원주민 여성들을 참여시킨 사례는 다양성을 확보해 혁신을 이룬 성과다.

젠더 감수성은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젠더혁신 실천을 위한 필수 요인으로, 여성 참여는 젠더 감수성 확보의 핵심이다. 볼보의 콘셉트카 YCC(Your Concept Car), 질레트 여성용 면도기 비너스, 서울시 ‘여행’ 프로젝트 등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여성 비중이 여전히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전체 연구자 중 여성 연구자 비율을 보면 OCED 회원국 중 한국은 18.18%로 일본 다음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유네스코(UNESCO) 자료에서도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 학사학위자 중 여성 비율은 40%지만, 박사학위자는 38%로 떨어지며, 연구자는 절반인 17%로 급감한다. 스리랑카, 파키스탄보다 낮은 수치다. 실제로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경력단절로 인해 ‘M자형’ 커브를 그리는 반면,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경력단절 이후 경제활동참가율이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 ‘L자형’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분야의 젠더혁신을 어떻게 이룰까. 답은 ‘성 주류화’에 있다. 성 주류화 정책은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고려해 평등하게 수립돼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과학기술 법·제도와 정책, 연구개발 사업에도 성 주류화 관점이 도입돼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 분야뿐 아니라 모든 사회 분야에서 의사 결정의 다양성 차원에서 30% 참여 확대라는 제도적 장치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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