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어린이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서울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어린이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2012년 대선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성의 지지가 높았던 까닭 중에 하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높은 복지분야와 교육, 보육, 일자리에 대한 공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산 마련이나 구체적인 시행 계획에서 비현실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필자 역시 여성 대통령이니 만큼 보육문제와 교육문제에서만은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거라 믿었다.

대통령 공약대로 2013년 봄부터 유치원 누리과정이 전면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그해 10월 정부는 초등 돌봄 서비스를 2016년까지 전 학년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대통령 공약인 유치원 누리과정 확대와 돌봄교실 예산이 정부 예산이 아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나간다는 것이었다.

교육 현장과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정부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결국 충분한 계획과 준비 없이 시작한 돌봄교실은 2014년 한 해 운영만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고 올해 3, 4학년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은 슬그머니 감춰졌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와 관련한 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문제마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책은 단순히 돌봄교실을 확대하거나 누리과정을 만들어 보육 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맞춰졌어야 한다.

국민은 행복해지고 싶었다. 좀 덜 쫓기고, 좀 덜 힘들기를 바랐다. 그래서 대통령의 국민행복 10대 공약에 기대가 컸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가계부채 경감은커녕 오히려 증가했고, 범죄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공약이 허구였다는 것은 4·16 세월호 사건 하나만으로도 여실히 드러났다.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과 고교무상교육, 사교육비 절감, 반값 등록금 공약은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고, IT·문화·콘텐츠·서비스산업 투자 확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노동자 해고 요건 강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한 노동 관련 공약이 지켜지기는커녕 한국노총과의 노동법 개악 합의로 오히려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그로 인한 고통은 여성들이 가장 깊이 느낄 수밖에 없다. 임금 인상은커녕 고용 불안만 더 커지고, 자녀를 보육하고 양육하는 데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은 줄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여전히 국민이 느끼는 고단함과 고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유아에 대한 보육과 양육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자화자찬을 하는 데 만족한다. 그러나 국민은 더는 그 자화자찬에 박수를 보낼 수가 없다. 삶이 전혀 바뀌지 않는데, 아니 오히려 더 힘들고 고달파지는데 언제까지고 참고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래전 남명 조식 선생은 ‘민암부’라는 글에서 “백성이 물과 같다는 이야기는 옛적부터 있었으니, 백성은 임금을 받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한 공약을 실행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섬길 줄 아는 자세를 갖는 것이었다. 국민은 어린애가 아니다. 혼내고, 겁주고, 자화자찬한다고 믿고 따르지 않는다. 삶이 바뀌지 않으면 국민도 더는 참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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