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앞둔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수능법회에서 학부모들이 수험생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앞둔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수능법회에서 학부모들이 수험생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능이 12일 치러진다. 아니나 다를까, 고3 학생들의 진료가 지난 한 달간 줄을 이었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아이부터 숨쉬는 것이 불편해졌다는 아이, 고사장에서 헛기침할까봐 두려워하는 아이,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 때문에 한참을 울고 간 아이도 있었다. 높은 스트레스 상태로 인해 난폭해져서 칼을 들고 난리를 피우다 온 아이도 있었다. 물론 하도 잠을 자서 허리가 아프다면서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 부모의 가슴을 후벼파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말했다. “마지막 힘을 짜내서 지금 버티고 있는데, 이제 부모의 기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올라서는 무대가 될 것 같아요”라고.

한숨과 함께 그 아이를 돌려보내면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깊은 부담과 애환이 담긴 고3병이라는 용어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집단질환 고3병. 고3병이라는 말이 나온 지 벌써 수십 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질환으로서의 고3병은 사실 의학적 진단도 아니고 의학사전에도 없지만 해마다 고3이라는 학년에 올라온 아이들이 기대와 부담 속에서 겪고 있는 신체적·심리적 병적 상태이다. 다른 나라에서 18세, 19세를 지낸다면 발생하지 않을 상태이고, 제도가 바뀌면 사라질 병적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이 병적 상태를 방치해왔을 뿐 아니라 악화시키기도 해왔다. 아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입시라는 단어와 가장 밀착된 단어가 전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강요해온 것이다. 잠도 줄여야 하고, 시간도 아껴 써야 하고, 모의훈련 같은 시험들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와야 하는 전쟁 같은 고3을 보내도록 해온 것이다. 혹독한 고3 제도를 유지해 오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아픔을 견뎌와야 했다.

통계적으로 예전 고3보다 지금 고3이 더 잠을 못 자고 있고, 더 우울하며, 불안하고 부담도 크다. 외동이, 두동이 세상에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고3 입시전쟁을 통해 승전보를 전해주지 못할까봐 이전보다 더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리고 패전의 소식을 전해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이 전쟁을 끝내기도 해왔다. 최근 인터넷에서 떠도는 고등학생의 네 글자 유서 “이.제.됐.어”는 이런 아이들의 전쟁 같은 고통을 반영하는 뼈아픈 말이기도 하다.

고3 수능 한 달 전부터 오늘까지 금쪽 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날개를 꺾인 새처럼 찾아와서 온갖 고통을 쏟아내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차마 부모의 기대 전부를 저버릴 수는 없는 애처로운 병든 18세, 19세 아이들의 고통을 우리는 언제쯤 줄여줄 수 있을까?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를 의심하게 할 순간이 너무 많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삶과 생활을 보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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