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가기 전 외국인 여성노동자 인권을 고민하자

한국에 와있는 3만여 명의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은, 예상할 수 있듯이, 남성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가혹하다. 무엇보다 수시로 행해지는 성폭력 위협은 이미 위험수위에 달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인권을 보호해줄 법과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의 지원조차 미약하기만 하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의 폐습은 ‘불법체류’란 이들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 제3의 피해집단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으로 ‘수출’돼 돈을 구걸할 수 밖에 없는 외국여성이란 편견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일본 등 소위 선진국 여성들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냈을 폭력들을 제3세계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일부 한국 남성들은 너무나 쉽게 자행한다.

다행히 외국인 노동자 인권단체 일각에선 여성노동자의 특수 상황을 고려, 여성노동자들만을 위한 전문팀을 구성해 그들의 인권보호에 적극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여성단체들이 전면에 나설 때다. 여성문제를 오랜 세월 동안 고민해온 여성단체들의 노하우가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발휘돼 전지구적 자매애로 표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은 60년대 선진 외국으로 ‘수출’됐던 우리 선배들의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생존해 오늘의 풍요를 이루는 데 바탕이 된 우리 선배들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을 지원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부끄러움을 최소화한 우리의 여성역사를 일구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여성스포츠에 관심과 수혈을

근래 들어 부쩍 여성스포츠 관련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본지가 집중 보도했던 여자농구선수들의 ‘쫄쫄이 유니폼’문제부터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 씨의 미 유수 프로야구팀 입단 등 당혹스럽거나 반가운 소식이 섞여 있다. 그 와중에 전해진 ’99 동계 아시안게임을 겨냥해 급하게 창단됐던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은 억누를 길 없는 분노를 자아낸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피겨, 쇼트트랙 등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도 아닌 여자 선수들을 대학 진학을 포함한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고 무작정 차출해와서는 경제적 이유를 들어 그 모든 약속들에 시치미를 떼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체육대까지 여자팀 창단 가능성은 제로라고 일축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된 여자선수들은 실날 같은 희망으로 협회의 ‘부름’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여성스포츠의 모든 싹이 이처럼 무성의하게 잘려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박세리로부터 시작된 여자골프 열풍은 다른 남성스포츠의 인기를 능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엔 치밀한 상업성이 스포츠란 이름을 빌어 숨어 있고, 대중 역시 알게 모르게 그 상업적 가치에 매혹된다. 그렇다면, 상업적 가치가 없다고 간주돼 버리는 여성스포츠는 사장돼도 좋단 말인가. 또, 새로운 상업적 가치 창출의 가능성은 전무한가.

의학의 급속한 발달로 여성과 남성의 신체 차이가 나날이 좁혀지고 있다는 요즘, 여성스포츠를 하루 빨리 육성하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낙오될 날이 예상외로 빨리 다가올 지도 모른다.

'박이 은경 편집부장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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