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저녁식사도 부부 동반 원칙

1년에 2개월은 가족과 함께 보내

철저한 가족 중심 문화가 행복의 열쇠

 

멕시코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하이메 알바레스(왼쪽)씨와 이지수씨 부부. 엔지니어인 이씨는 온라인에서 ‘몬테 왕언니’로 불리며 멕시코 전도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멕시코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하이메 알바레스(왼쪽)씨와 이지수씨 부부. 엔지니어인 이씨는 온라인에서 ‘몬테 왕언니’로 불리며 멕시코 전도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97년에 한국 회사가 입찰에 성공해 멕시코 정부 공사를 따낸 적이 있다. 중공업에 다니는 여성 엔지니어는 현장에 잘 보내주지 않지만, 영어를 잘해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뽑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더라. 그만큼 멕시코에 무지했다.”

여행가방 2개 달랑 들고 멕시코로 날아간 이지수(52)씨는 건축가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한국에서 중공업 회사에 다니며 야근은 기본, 주말에도 ‘미친 듯이’ 일하던 그가 만난 멕시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두가 느긋했다. 시멘트도 아니고 흙바닥에 의자도 없이 앉거나 서서, 약간의 술과 음악만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 분위기에 매료된 그는 ‘몬테 왕언니’로 불리며 멕시코 전도사가 됐다.

“멕시코는 느림의 미학이다. 모든 사람이 긍정적이고, 과시하지 않고, 가식 없이 즐겁게 논다. 치과 치료를 못 받아서 이도 몇 개 없는데 해맑게 웃는 모습,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빠져서 15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두고 멕시코에 남았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일주일도 마음 놓고 놀아본 적이 없더라. 당시 멕시코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기대감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니 느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다.”

이씨가 현장 책임자로 만난 하청 업체의 사장이 지금의 남편 하이메 알바레스(56)씨다. 멕시코 속담에 ‘오전 11시 전에 일을 시작하는 사장은 사업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회사 사장은 여유 있게 일한다. 알바레스씨는 이씨를 만난 후부터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해 저녁 9시까지 일을 도와야 했다. 이씨가 ‘한국 스타일’을 고수한 것이다. 남편은 그런 이씨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미쳤구나!’ 남편은 한국 업체와 일한 경험으로 회사를 키웠고, 일에 쫓기던 이씨는 작은 것에도 큰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

 

이지수씨는 “멕시코는 철저하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지수씨는 “멕시코는 철저하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편은 10남매 중 둘째다. 가족이 다 모이면 40명이 넘는다. 돌아가며 생일파티만 해도 매주 만나는 셈이다. 멕시코는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아무 일도 안 된다. 공무원들이 없어진다. 보통 3주 정도 휴가를 떠난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파티, 12월 31일 신년파티는 전부 가족과 보낸다. 멕시코는 가톨릭 국가여서 3월 말이나 4월 말에 사순절 성주간으로 목, 금, 토, 일 4일이 공식 휴가다. 학교는 2주간 쉰다. 많은 사람이 이때 또 휴가를 가지만 아무도 눈치 보지 않는다. 여름방학에 2주를 또 같이 보낸다. 그러니 1년에 두 달은 싫으나 좋으나 40명의 가족이 모여서 먹고 자고 논다.”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가족이다. 노후 보장은 국가가 해주는 게 아니라 가족이 해준다. 딸이 부모를 모시는 멕시코에서 남자들의 육아 참여율은 높다. 여성은 법적으로 3개월의 유급 출산휴가를 받고, 남성은 2주간의 유급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 비해 짧은 기간이지만, 개인 회사의 경우 회사에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업무 중간에 아이에게 다녀올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회사가 가정을 적극적으로 배려한다. 멕시코에서는 아이가 사무실에 있어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사업상 저녁 식사에 누군가를 초대할 때는 부부 동반이 원칙이다. 만약 상대방 한 사람만 접대하면 부인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을 뺏은 게 된다. 멕시코에서 영업을 잘하고 싶으면 부부가 같이 갈 수 있는 근사한 식당을 고르고 나도 배우자와 함께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 상대방 부인이 ‘그 사람 좋더라’ 호감을 표하면 성공이다. 한국 사람들이 멋모르고 남자 혼자 끌어내서 골프를 치게 하고, 식사를 대접하다가 미운털이 박힌다. 멕시코는 부인의 힘이 세다. 여성의 파워가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거다. 철저하게 가족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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