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 대표의 청소녀 성폭력 사건 ‘무죄’ 논란

15세 중학생 임신시킨 40대 남성 ‘무죄’ 판결

만약 사랑이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도 괜찮나

“법원,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 드러내”

‘의제강간’ 연령 높이고 가해자 연령도 고려해야

 

250개 여성‧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의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무죄판결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50개 여성‧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의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무죄판결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5세 중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출산까지 하게 한 40대 기혼 남성에게 서울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으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1·2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 모두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의 진술보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가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법부의 몰이해와 편향적인 태도를 드러낸 이번 판결에 대해 “비상식적”이라는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는 한편,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도 21일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8부에 상고장을 제출해 사건은 또 다시 대법원에서 사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이광만)는 16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혐의로 기소된 A(46)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2011년 8월 시작됐다. 당시 A씨는 13살 난 아들과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학생 B(당시 15세)양에게 연예기획사 대표라며 접근했다. A씨는 만난 지 4일 만에 자신의 승용차에서 B양과 성관계를 맺고 임신시켰다. 이후 집안이 어려웠던 피해자는 가출해 남성의 집에서 지냈고 지속적인 가해를 당했다. B양은 출산 직후 빠져나와 A씨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재판부가 두 사람을 연인 사이라고 판결한 이유는 이렇다. 중학생 B양이 A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와 접견 서신에 ‘사랑한다’ ‘많이 보고 싶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점, B양이 보낸 메시지에 A씨를 ‘오빠’ ‘자기’로 호칭하는 점, B양이 성관계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사랑이라고 판단했다.

250개 여성·사회·인권 단체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의 퇴행적 판결을 규탄했다.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피해자 입장에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지만, 재판부는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가해자가 무조건 사랑이라고 우기면 성폭력이 사랑이 되는 것이냐”면서 “이번 판결로 인해 여성 폭력 피해자들이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더 어려워지고 성폭력은 더 만연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번 파기환송심이 형사처벌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민사소송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판결이 헌법 정신을 제대로 구현했는지 판단하는 위헌법률심판재청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로 인해 이른바 ‘의제강간’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형법 제305조는 ‘13살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한 자는 강간죄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의제강간 조항이라고 부른다. 청소년의 ‘성 보호’를 위해서는 이 기준 연령을 15~16세로 조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나이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 사회적 위치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와 성인 간의 성적인 접촉을 마치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이들 간의 합의된 성관계인 것처럼 현행법을 좁게 해석한 것 같다”면서 “현재 13세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는 한편, 가해자의 연령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스위스, 미국 대부분 주처럼 16세 이상으로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특히 주별로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의 형량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나이 차이가 3살 많을 경우부터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2년 미성년자 의제강간 적용 나이를 만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올리자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청소년의 성의식 수준이 발달했고 △15세 청소년들끼리 서로 동의하에 키스를 해도 무조건 처벌해야 하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해 법 개정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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