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부모세대의 노후를 빼앗아 최저임금이나 챙기는 일자리가 아니라 능력과 꿈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 박람회’에서 수원여대 학생들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부모세대의 노후를 빼앗아 최저임금이나 챙기는 일자리가 아니라 능력과 꿈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 박람회’에서 수원여대 학생들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0월의 황금연휴 내내 딸은 노트북을 끼고 앉아 자기소개서를 썼다. 취업 재수 1년 차, 대학을 졸업한 뒤 석 달간 한 웹북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다시 하반기 공채 시장에 발을 디뎠다. 딸은 입시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대학에 입학했고, 성적 장학금을 받으며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마쳤다. 딸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취업학원 같은 대학에 회의를 가졌다. 그래서 친구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골몰할 때 봉사활동과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다.

“엄마, 나는 내가 괜찮은 인재라고 스스로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어디에 가든, 어떤 일을 하건 잘 해낼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 그런데 취업시장에서 나는 상품 가치가 없네.”

딸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에 그 흔한 어학연수조차 가지 못했고, 4학년이 돼서야 한 달 남짓 학원을 다니며 토익, 오픽 시험을 봤다. 다행히 점수는 상위권이었지만 그 정도의 실력은 취업시장에 넘쳐났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어미가 되려면 진즉에 빚을 내서라도 온갖 학원에 보내고, 해외 어학연수를 보냈어야 했는지 모른다. 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미래의 자신이 될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눈감고,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밀양 송전탑 투쟁, 4‧16 세월호 참사 따위에도 눈감으라고 말했어야 했는지 모른다. 이 무능한 어미의 딸이 바라는 직장은 아주 소박하다.

“내 전공인 홍보마케팅 쪽이면 스타트업 회사도 좋아. 다만 주 5일 근무와 4대 보험, 최저임금이 아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월 180만원에서 200만원의 임금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취업 시장은 딸의 그 소박한 꿈이 허황된 욕심이라며 눈을 낮추라고 강요한다. 서류전형에 합격해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서는 당연한 듯 ‘열정 페이’를 운운하고, 회사 사정에 따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기꺼이 감수할 것을 요구받는다. 노조가 있는 직장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면접관에게 짓밟힌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며칠을 끙끙 앓아야 한다. 나는 내 딸이 선택한 지난 4년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 떳떳한 시간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자신의 정신력으로만 가질 수 없다.

정부는 지난달 노사정 대타협을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노동법 개혁은 청년들의 꿈을 아예 짓밟는 개악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청년들의 부모세대의 노후를 빼앗아 최저임금이나 챙기는 일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 자신의 꿈을 제대로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다.

중·고등학교로 작가 초청 강연을 가게 되면 늘 “자신의 꿈이 노동자인 사람, 혹은 자신의 미래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라고 묻는다. 어느 학교에서도 손을 드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 “여러분은 미래의 노동자”라고 말하는 것도 모자라 이 중에 절반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거라고 말하면 몹시 불쾌해한다. 나는 불쾌해하는 그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의 미래는 노동자입니다. 교사도, 디자이너도, 엔지니어도, 버스기사도, 작가도 노동자입니다. 여러분은 노동자가 되는 것이 실패가 아닌 희망이 되는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는 함께 손잡고 싸워야 얻어집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낯선 말일지 모르지만 함께 살기를 선택할 때, 우리는 우리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