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젠더로 접근하라-핀란드│⑥ 젠더 관점 담은 노동개혁

조세부담률 높아도 복지 혜택 덕에 반발 적고

연금 가입 안 해도 월 750유로 국민연금 보장

간병인, 마트 계산원 등 여성 몰린 직종 임금은 평균 이하

성별 임금격차부터 해결해야 여성노인 빈곤 문제 해결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노점에서 노인들이 꽃을 사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노점에서 노인들이 꽃을 사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과 남성이 받는 연금 수급액 차이는 임금격차와 재직 기간에 따른 것이다. 노동시장이 달라져야 여성 노인 빈곤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미코 카우토 핀란드연금센터 조사통계개발실 실장은 핀란드 연금 개혁 과정을 설명하며 이러한 의견을 내놨다. 연금제도를 통해 빈곤 노인을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카우토 실장이 속한 연금센터는 핀란드 국책연구기관으로 특히 소득비례연금에 관한 조사 연구를 맡고 있다.

평균 연금 수령액 월 182만원

핀란드의 연금제도는 저소득층 노인에게 최저소득을 보장해주는 국민연금과 18세 이상 근로자는 모두 가입해야 하는 소득비례연금로 나뉜다. 조세부담률은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44.5%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18.7%(2012년 기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24.7%이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714유로(약 93만원)이며, 소득비례연금이나 개인연금 지급액이 많아질수록 국민연금 수령액은 줄어든다. 기초연금과 기타 연금을 합친 개인당 평균 연금 수령액은 월평균 1400유로(약 182만원) 수준이다. 이에 따라 노인 빈곤율도 지난해 기준 12.7%로, 우리나라(45.1%)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핀란드 정부는 2017년 1월 시행에 앞서 2차 연금 개혁을 진행 중이다. 인구 고령화와 지속되는 경기침체 등의 여파에 따라 연금 개혁은 불가피했다. 2005년 단행된 1차 연금 개혁은 정년을 꾸준히 연장하면서,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춰왔다. 65세였던 의무 퇴직 연령을 없애고 63~68세 노동자에게 소득비례연금의 가산기여율을 높였다. 연금 수령 나이를 무조건 올리기보다 연금을 일찍 받으면 급여가 줄어들어 늦게 받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개혁은 확고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천천히 진행됐다. 2차 연금개혁 역시 노동 기간을 늘리는 등 연금을 적립할 수 있는 인구를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금 개혁 과정에는 젠더 관점이 담긴 특별한 제도는 보이지 않았다. 카우토 실장은 그 이유에 대해 “기초연금과 유족연금을 통해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여성이 받는 임금이 남성보다 현저히 적었고, 육아 부담으로 인해 재직 기간도 짧았으나 지금은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노동 기간도 남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여성만을 위한 새로운 제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연금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노동시장의 변화다”라고 강조했다.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대형마트에서 노인의 장을 보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대형마트에서 노인의 장을 보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임금·재직 기간 차이가 연금 차이로

핀란드연금센터에 따르면 핀란드 여성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967유로(약 386만원), 남성은 3610유로(약 469만원)다. 여성은 남성이 받는 임금의 82% 정도만 받는 셈이다. 여성의 월평균 연금 수급액도 1411유로(약 184만원)로 남성(1803유로, 약 235만원)의 78% 수준이다. 임금과 연금 수급액 모두 남성보다 적은 여성이 노후에 빈곤해질 가능성이 더 높은 셈이다.

카우토 실장은 OECD 1위인 한국의 여성 노인 빈곤율과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을 살핀 뒤, “남성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기간이 더 긴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면, 여성 노인 빈곤 해소와 연금재정 안정 등을 모두 꾀할 수 있다”며 “일·가정 양립 정책과 남성의 돌봄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핀란드는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출산율도 높이는 방안으로 모성보호제도, 남성의 돌봄 참여 등을 적극 추진해 왔다. 근로자들에게는 26주간의 육아휴직이 주어지고, 이 기간 통상 소득의 70~75%가 보전된다. 모든 기업이 연간 성평등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평등 옴브즈맨(Ombudsman for Equality)도 진행 중이다. 현재 핀란드 성별 고용률 차이는 1%이며, 여성 고용률은 77%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은 56%다.

 

핀란드 헬싱키 헬싱키대학 도서관에서 노인이 책을 보며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핀란드 헬싱키 헬싱키대학 도서관에서 노인이 책을 보며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간병인 235만원<평균 429만원

우르요 마틸라 켈라 선임 연구원도 “노동시장이 바뀌어야 여성 노인 빈곤이 해소된다”면서 여성이 몰려 있는 직종의 낮은 임금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켈라 선임 연구원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원칙은 지켜지고 있지만, 남성들이 많은 건설업과 비교해 여성들은 사회서비스 직종에 집중돼 있는데, 이 분야의 임금이 평균보다 낮다”며 “ 직종별 임금차이가 성별 임금격차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켈라 연구원은 핀란드 기초연금과 저소득층 주택수당, 보육비 지원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을 책임지는 기구다.

그에 따르면 핀란드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300유로(약 429만원)인 반면, 여성들이 몰려 있는 마트 계산원은 2000유로(약 262만원), 홈케어 간병인은 1800유로(약 235만원)에 그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도 이들 직종의 낮은 임금을 단시간에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켈라 선임 연구원은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높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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