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 쓰고 4대 보험 가입하고 활동일지 적는데

광주·대구 노동청 “아이돌보미 근로자 아냐” 판단

 

지난 3월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아이돌봄 광주지회 노조원들이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하게 밀린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 줄 것을 광주노동청에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3월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아이돌봄 광주지회 노조원들이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하게 밀린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 줄 것을 광주노동청에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건강가정지원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4대 보험료도 꼬박꼬박 내는데 우리가 왜 근로자가 아닙니까?”

아이돌보미들은 말문을 열기 전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답답한 마음을 들어주는 곳도 없다”며 울분을 쏟아내기도 했다. 최근 광주·대구 지방노동청이 “아이돌보미는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미들은 특히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판단에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돌봄 지원사업은 만 12세 이하 아동을 둔 취약 계층이나 맞벌이 가정 등을 위해 정부의 양성 교육을 받은 아이돌보미가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아동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서비스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 평가에서 88점을 받을 정도로 이용자 만족도도 높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돌보미에 대한 처우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가 밝힌 내년 예산안을 보면 아이돌보미 시급은 6100원으로 결정됐다. 4대 보험료를 공제하면 최저임금(2016년 6030원)보다도 낮다. 정부가 시간제 돌봄 서비스에 대한 정부 지원을 1회 2시간 이상, 연간 480시간 이내로 제한하면서 아이돌보미의 평균 급여도 함께 줄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별도로 지급되던 교통비 지급 기준이 바뀌면서 대부분의 아이돌보미들은 이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광주·대구 고용노동청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리면서 아이돌보미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지난 2013년 6월 “근로자성 인정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힌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을 정부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광주에서 9년째 아이돌보미로 일하는 권현숙(60)씨는 지난해 9월 4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보낸 “9월 1일부터 교통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문자를 받고 처음 노동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법조문을 읽고, 비슷한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알게 되면서 “노동자를 위한 법마저 단시간 시간제 노동자인 우리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권씨는 광주·대구 고용노동청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으나 서울북부지청은 비슷한 사건에 대해 체불 수당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과 관련, “아이돌보미는 서울에선 근로자고, 광주에선 사업주냐”며 오락가락하는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구에서 아이돌보미로 일하는 정현숙(55)씨는 4대 보험료를 낸 이후에도 연장수당과 휴일근로수당, 주휴수당을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다른 아이돌보미들도 모두 같은 처지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수당에 대해 알게 된 그는 지난 1월 관할 노동청에 체불 임금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청이 4번이나 연장 통보를 한 끝에 8개월 만에 내린 결론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말뿐이었다.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아이돌보미를 지휘·감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시 말해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이나 주휴수당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씨는 “지금은 활동일지를 기록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있지만, 초기엔 아이돌보미들은 일 시작할 때와 끝난 직후 센터에 문자로 보고를 해야 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매달 한 번씩 센터에 모여 지침 사항을 전달받고, 이용자들이 이용금도 센터에 먼저 입금한다”며 “아이돌보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종속 관계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외적으로는 대표 가족지원사업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실질적인 아이돌봄 지원사업의 이용자인 아이돌보미의 처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정부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정씨는 “우리는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법에 준해서 권리를 찾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뿐”이라며 “정부는 아이 한 명에 외가, 친가, 부모, 아이돌보미까지 7명의 유권자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돌보미들의 수당 체불 진정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이 2012년 4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전국 지역고용노동청에 제기된 아이돌보미 관련 진정사건을 조사한 결과, 서울·광주·대구 등에서 15명이 12건의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말부터는 수원·용인·과천·광주·성남 등 6개 지역에서 아이돌보미 25명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주휴수당·연차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당 체불 진정을 냈다.

대구일반노조는 “고용노동부 스스로 근로자성을 인정한 아이돌봄 종사자에게 이번에는 ‘근로자성 없음’을 통보해 법적 안정성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며 “아이돌봄 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이돌보미들은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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