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6개월 남겨놓고 공천권 두고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충돌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고무돼 자신이 모든 것 할 수 있다는 과욕서 벗어나야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추진 중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여야 대표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부산에서 만나 내년 총선 공천에 이 제도를 도입할 것을 잠정 합의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각 정당은 지역구별로 공천 선거인단의 20배에 해당하는 유권자 안심번호 제출을 이동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 가령 한 지역구에서 선거인단을 1000명으로 구성할 경우 이동통신사는 성별과 연령별로 고르게 해당 지역 거주자 2만 명의 안심번호를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같은 날 동시에 할지, 선거인단 규모를 몇 명으로 할지, 조사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논의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100%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유선전화를 이용한 기존의 여론조사 방식과는 달리 많은 장점이 있다. 소수 권력자의 공천 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무더기 착신 전환 같은 일종의 조직 동원 선거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으며,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지지자들만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해 이른바 역 선택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안심번호를 받은 사람들이 누군지 알려질 가능성이 있고, 지지 정당을 거짓으로 밝히면 역 선택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으며, 휴대전화가 없는 고령층이 투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을 지낸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믿을 수 없는 제도”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로 “전화번호가 밖으로 유출 안 된다는 것일 뿐”이고 이 제도는 “많은 착오와 오류, 진실이 아닌 허위가 개입될 가능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까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공천제는 민심 왜곡, 조직 선거, 세금 공천이라는 비난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공개 비판은 유엔 외교를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가 무엇이든 청와대가 여야 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공천에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정두언 의원의 지적처럼 “공당의 대표가 하는 일을 가지고 청와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정말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나 있었던 일”이다. 공천 규칙은 각 정당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로 청와대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전략적 악수를 둔 이유는 간단하다. 2012년 총선 때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대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르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자신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정치 신인을 전략공천을 통해 대거 국회에 입성시키려고 해도 안심번호 공천제가 버티고 있는 한 힘들기 때문이다.

분명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하는 것은 정치 후퇴이고 정당정치와 의회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대통령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배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국회법 재·개정을 반대하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렸던 것처럼 국민공천제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김무성 대표를 찍어내려고 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의 공개적인 비판에 대해 “청와대 지적은 다 틀렸다”면서 “청와대 관계자가 당 대표를 모욕하면 되겠느냐”라고 강력 경고했다. 그 일환으로 김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시간은 김 대표 편이다. 새로운 제도의 장‧단점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60년 정당 사상 처음으로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당 대표를 대통령이 흔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내년 총선을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 공천권을 누가 잡느냐를 놓고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충돌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과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에 이 정부의 명운을 걸고 있는 노동 개혁에 전념해야 한다. 청와대는 한가하게 공천권 문제에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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