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등 27개 주요 대학 조사 결과 발표

성범죄 주요 타깃은 여성과 성 소수자

피해 사실 신고 주저… 대학·사법기관 신뢰도 낮아

 

미국 대학 내 성범죄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헌팅 그라운드(Hunting Ground)’의 한 장면. ⓒ영화 ‘헌팅 그라운드’ 스틸컷
미국 대학 내 성범죄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헌팅 그라운드(Hunting Ground)’의 한 장면. ⓒ영화 ‘헌팅 그라운드’ 스틸컷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 친구가 강간을 당했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겁니다.” 지난 2월 미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헌팅 그라운드(Hunting Ground)’ 속 성폭력 피해자의 말이다. 영화는 하버드, 듀크 등 미국 유수 대학의 성범죄 실태와 대학 당국의 미온적 대응을 고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방 당국이 대학 내 성범죄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학 성범죄가 미국 전역에서 이슈가 되면서 연방정부와 대학이 나서서 성폭력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미국대학협의회(AAU)가 9월 21일(현지시간)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미국 27개 주요 대학 학생의 11.7%가 힘으로 제압당했거나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술이나 마약류를 이용한 성범죄가 전체 성범죄의 상당 비중을 차지했다고 AAU는 밝혔다. 

특히 여자 학부생과 성 소수자의 피해가 가장 컸다. 성범죄를 당했다고 답한 여자 학부생은 23.1%, 남자 학부생은 5.4%였다. 대학원생의 경우 여성은 9%, 남성은 2%가 성범죄를 당했다. 트랜스젠더, 젠더퀴어(genderqueer·양성탈피자) 등 성 소수자 피해자의 비중도 높게 나타났다.

대학 내 성범죄 피해자들은 대학이나 사법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을 대체로 꺼렸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답한 이들은 피해 양상에 따라 전체의 5~28%뿐이었다. 

‘신고하지 않겠다’고 답한 이들은 △사건이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아서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아무 조처도 없을 것 같아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응답자의 63.3%는 ‘대학이 신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답했고, ‘대학이 정당한 수사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응답률은 50%였다. 

특히 주요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과 성 소수자의 경우 대학이나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4월과 5월에 하버드, 예일 등 주요 27개 대학 학부생과 대학원생 등 약 15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헌터 롤링스 AAU 회장은 “우리는 이번 조사에 참여한 대학들이 조사 결과를 통해 성범죄 대처·예방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성범죄 신고를 공감하는 자세로 진지하게 다루고,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와 해결책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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