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때문에 입지가 불안해지고 정면 타격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전처 딸인 고희경씨의 낙선 호소 글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곤혹을 겪은 고승덕 후보. 고 후보가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선거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친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가족관계 때문에 입지가 불안해지고 정면 타격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전처 딸인 고희경씨의 낙선 호소 글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곤혹을 겪은 고승덕 후보. 고 후보가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선거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친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언젠가 어느 신문사와 함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식사를 일주일에 몇 번 하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일주일에 두 번이 가장 많았다. 한 번이 절반 정도였으며, 단 한 번도 없는 가정 또한 많은 숫자로 나타났다.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 가족이 또 얼마일까 생각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서로 온 가족이 얼굴 마주보며 밥도 먹지 않고 스쳐 지나가며 아침인사나 저녁인사를 나누고, 아예 얼굴도 서로 못 보는 가족도 많다는 이야기쯤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뉴스를 보거나 세상을 살다 보면 가족관계 때문에 자기의 입지가 불안해지고 정면 타격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기가 잘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간접책임이라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간접책임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그 사람의 위치를 흔드는지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금방 대통령이 될 듯한 사람도 금방 총리가 될 듯한 사람도, 금방 시장이 될 듯한 사람도 가족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일주일에 같이 밥 한 번 안 먹는 가족일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실수가 가족의 자리를 실추하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논리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가족관계가 ‘우리’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사회구조 안에서 각자가 조난자처럼 살아가지만, 정작 누군가가 그 가족의 실수나 행동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을 굳이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자기 나름의 처절한 사회적 논리가 필요하다. 잘하고 있으려니 믿어버리고 싶은 가족 관계의 기본 믿음 외에 사실 서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그렇듯이 결국은 가족 관계에 기본 대화나 원초적 믿음을 깨뜨리지 않는 가족 관계의 참담한 노력이야말로 ‘사랑’이라는 단어로 형성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한 집에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이어져 견고한 끈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가족이 된다. 때문에 간접책임은 없는 것이다. 한 가족의 실수는 그 사람의 실수로 인정되며 변용이 어렵다. 그러니 가족관계야말로 자신의 건강처럼 챙기며 그것을 단속하기보다 기본적으로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원칙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커지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는 과목이 중·고교 과정에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취는 가졌을 때 더 위험하다고 한다. 허무감을 이기려면 쾌락보다는 사람과 자연과 교감하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

CCTV보다 더 명료한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다. 마음 안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리더가 어느 단체이든 당당한 리더가 된다는 이 논리는 변함이 없는데 우리는 자칫 마음이 약해진다. 몸과 마음이 아픈 그 진실을 누가 탓하겠는가.

그런데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그런 리더들을 볼 때 사실 우리도 몸과 마음이 아프다. 국가를 한몸으로 본다면 기실 우리는 어디쯤을 가장 명확하게 도려내어 깊어지는 병을 중단되게 할 것인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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