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월평균 사교육비 늘어

학교, 학원 모두 선행학습 금지해야

입시제도 개편 없인 실효성 없어

 

 

“학원에서 ‘수학 선행 안 했느냐’고 묻더라. ‘못 했다’고 했더니 ‘7~8월 방학 동안 선행해서 9월에 오시라’고 하더라. 기초를 가르치지 않고, 심화학습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1학년이면 1학년 수학을 모두 끝내고 가야 한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영희(60)씨. 만혼에 맞벌이 부부인 김씨는 올해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한 달에 110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할 생각이다. 김씨는 “근처 유명 학원에 들어가려면 예비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학교에서 선행학습 금지했다고 바뀐 게 뭐가 있냐”고 반문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12일부터 추진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일명 선행학습 금지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최근 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교육부가 ‘방과후교실 선행학습 허용’ 개정안을 내놓자 선행학습 금지법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방과후학교에서 월 4만~5만원대의 수업료로 배울 수 있었던 선행학습을 금지하면서 이 수요가 학원으로 빠져나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교육부는 “방과후학교에서 교육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면 사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지난 3월 방과후학교 선행학습을 허용하는 ‘공교육정상화법 일부 개정법률’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입법 절차만 남은 상태다.

선행학습이 사교육비 증가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꼽히면서 정부가 규제에 나섰지만, 그 사이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2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동 시행한 ‘2014년 사교육비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후 학생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으로, 시행 전인 2013년 23만9000원보다 1.1% 늘었다. 1인당 월평균 수학 사교육비는 7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교육부가 사교육의 직접적인 원인인 선행교육 풍토 근절을 위해 지난해 3월 ‘공교육정상화법’을 제정하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은 놔두고 학교에서만 선행학습을 금지하다 보니 학생들은 오히려 학원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취재 결과 일부 학교는 감시망을 피해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양평의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 최영진(가명·55)씨는 “교육청에서 점검한 것은 정규교육과정 안에서 정해진 진도보다 앞서 나갔는지, 그걸 시험 문제로 출제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라며 “그렇게 해도 입시교육을 하는 학교는 모두 선행학습을 했다고 봐야 한다. 시험에만 안 낼 뿐”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유지되는 한 어떤 대책을 내놔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수학 교사 김용수(가명·37)씨도 “학원에서 다 (선행학습을) 하는데 학교에서만 안 하면 학교만 믿고 있는 아이들만 결과적으로 ‘바보’ 만드는 것”이라며 “교육부가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거로 생각하나. 알면서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이렇게 했다’ 하는 전시 행정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은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공교육의 정규 수업에서만 선행학습을 규제하는 선행학습 금지법은 공교육의 정상화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법”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선행학습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초·중·고의 모든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그것이 어려워 선행학습 금지법을 내놨다면, 방과후학교와 학원 등 모든 교육기관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방과후학교 선행학습 허용에 대해 “법의 취지를 역행하고 있다”며 “정규 시간에는 교육과정을 지키고, 방과 후가 되면 교육과정을 어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부소장은 “선행학습 금지법의 핵심은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선행학습을 했던 아이들에게 ‘안 해도 되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 법의 취지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진정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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