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의 여자 & 책읽기 / 『여자와 책-책에 미친 여자들의 세계사』

 

『여자와 책』 / 슈테판 볼만 / 알에이치코리아
『여자와 책』 / 슈테판 볼만 / 알에이치코리아
『여자와 책』이 아니었으면 나는 마릴린 먼로를 백치미나 뽐낸 그렇고 그런 영화배우쯤으로 평생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하철 배기구에서 부풀어 오르는 치마를 부여잡고 있는 사진으로만 기억했을지도. 하지만 『여자와 책』에 등장하는 마릴린 먼로는 달랐다. 그녀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사랑한 열정적이고 지적인 독서가였다. 작품의 진가와 뜻을 알기 위해 “앞으로 수세기 동안” 학자들이 불철주야 연구해야 한다고 했던 『율리시스』를 먼로는 연기의 교과서로 삼았다.

『여자와 책』은 책을 사랑한 여자들의 역사를 소상하게 설명한 책이다. 18세기부터 최근까지, 300년에 이르는 여성의 독서를 인물 중심으로 그려낸다. 흥미로운 것은 제인 오스틴부터 버지니아 울프를 거쳐 수전 손택까지 책을 사랑했던 여자들은 한사코 세상의 편견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여자와 책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18세기 당시에는 전통과 지식, 종교와 연결되면서 독서야말로 전형적인 남성만의 행위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독서에 빠지게 된 배경이 있으니, 사랑의 굶주림이 여성들을 책으로 이끌었다. 1750년 대학을 중퇴한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라는 남자는 젊은 여성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시를 들려주었다. 대가는 키스 한 번. 물론 사랑이 다는 아니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여성들의 몫이기도 했는데, 여성 최초로 문학비평을 직업으로 삼은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이기도 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자유를 갈망한 대표적인 독서가다. 독서로 단련된 그녀는 18세기 후반부터 여성적인 삶은 없다며 남녀평등을 구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세기 책 읽는 여자의 대표격은 『오만과 편견』의 위대한 작가 제인 오스틴이다. 그녀는 독서가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가능케 한다고 봤다. 특히 소설을 읽는 여자들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봤는데, 그 때문인지 작품 주인공이 열혈 독서가인 경우가 많았다. 교사나 교육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여자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19세기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간통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니나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도 한몫했다.

20세기로 넘어오면 여자들의 책읽기가 그나마 자유롭다. 첫 타자는 버지니아 울프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그녀는 “교양에 굶주린 사람처럼” 책을 읽어댔다. 이 시절에는 여자들과 책이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했고, 어떤 과감한 여자는 금서를 손수 인쇄해 암시장에 내보내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가 읽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그렇게 유통됐다. 1960년 이후 수전 손택이라는 걸출한 평론가가 등장했는데, 그녀는 지금도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손꼽힌다. 문학과 책, 여자의 절묘한 조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자와 책』은 여자와 책이라는, 고릿적에는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절묘한 조합의 역사를 세세하게 밝히는 책이다. 책이 밝혀준 역사의 한 자락을 소상하게 보여주는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으니, 특히 여성신문 독자들이라면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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