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에서 얼굴을 가리고 심지어 온몸의 특징을 다 숨기면서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우리가 익히 알던 가수이든, 잘 모르던 재야의 고수이든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그의 노래만을 듣고 느낀다. 그 속에서 ‘복면가왕’이 나오고 그 가왕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술렁이기도 한다. 가끔은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게 될 때도 있지만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나?”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복면가왕 ⓒ뉴시스ㆍ여성신문
복면가왕 ⓒ뉴시스ㆍ여성신문

단순히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는가,만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호기심 만으로 인기가 유지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스스로의 ‘편견’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있던 ‘브랜드’의 힘을 벗어나는 특별함에 대한 경험.”

잘 포장된 것이든 혹은 오히려 부족한 것이든 그것의 ‘브랜드’를 벗고 본질에 접근하는 경험에 흥분하는 모습에서 앞으로의 시대를 살짝 들여다보게 된다. 너무 많은 광고, 수십억을 들인 마케팅 홍보, 오랜 세월 동안 무의식에 자리잡은 브랜드의 힘…. 이제 의식적으로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3년 전쯤 후배 한 명이 가방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명품 가방이 흘러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품질과 디자인으로 승부하겠다고 하니…. 큰 자본 없이 그야말로 열정 하나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게다가 고품질을 고집해 쉽게 지갑을 열 수 없는 가격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의 무지였는지 후배는 고군분투의 과정 속에서도 자신만의 위치를 잘 다져갔고 며칠 전 방문한 사업장에서는 이른바 ‘성공’의 향기가 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고객일까. 브랜드, 명품보다는 ‘나만의 가방’, ‘품질이 확실한’ ‘정성이 묻어 있는 가방’을 원하는 고객들이라고 한다. 그 브랜드는 마케팅이나 홍보의 힘이기보다는 고객의 욕구에 집중하는 ‘본질’에 투자한 결과이므로 남다른 경쟁력이 있음이 분명하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품질을 보증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의 강력한 브랜딩 파워에 별 고민 없이 소비를 하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특별한 날, 특별한 나만의 욕구에 대해서만큼은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초변화의 시대인 만큼 욕구는 더욱 세분화되므로 다양한 본질이 모두 각자의 빛깔을 내기 때문에 서서히 본질에 집중하는 소비가 생겨나는 것이리라.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절대가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기업이 정의내린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고객이 직접 경험하고 정의하는 ‘절대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브랜드를 벗고 본질의 힘, 진짜 경쟁력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상품이나 서비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인지, 어떤 삶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판단에도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일종의 편견을 조금씩 걷어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복면을 쓴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관중에 머무르지 말고 나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보면 어떨까? 복면을 쓰고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 낸 그들은 한결같이 관중보다 스스로가 더 행복하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본질을 가로막고 있던 포장을 벗기고 복면을 쓰면 진짜 자신을 내보일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말이다. 스스로의 경쟁력이 더 잘 보이고 더 당당해지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라 생각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복면을 쓰고 자신을 가리자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씌워진 포장을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숨기고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 절대가치의 시대라면 바로 이런 기회도 함께 온다는 뜻이 아닐까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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