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인문학 여행

1686년 문 연 ‘르 프로코프’ 당대 최고 명사들로 문전성시

성공 힘입어 카페 대중화… 알퐁스 도데, 피카소, 마네

글 짓고 그림 그리던 예술가들 카페서 예술혼 꽃피우다

 

생 제르맹 데 프레의 가장 대표적인 카페 되 마고. ⓒroger.salz in Wikimedia
생 제르맹 데 프레의 가장 대표적인 카페 되 마고. ⓒroger.salz in Wikimedia

 

귀를 자른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딴 카페. ⓒ프랑스관광청
귀를 자른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딴 카페. ⓒ프랑스관광청

파리를 다니며 누리는 즐거움의 하나는 오랜 역사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카페를 찾는 것이다. 파리지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길거리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카페는 이들에게 일상과 같다. 파리를 빛낸 위대한 인물들도 이러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것이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이면서 하나의 문화가 됐다.

볼테르의 카페 사랑

프랑스어로 카페(café)는 커피를 가리키지만 음료를 마시는 장소인 커피숍을 동시에 의미한다. 파리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7세기다. 오스만투르크에서 온 사절이 일본 자기에 따뜻한 커피를 따라 루이 14세에게 진상한 이래 귀족들 사이에서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을 탔다.

한동안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카페’는 대중에게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서 하나둘씩 생겨난 카페는 대개 영세한 형태였는데 시칠리아 출신의 코스텔 리가 매우 화려한 카페 ‘르 프로코프’를 선보이면서 새롭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거울로 장식한 벽과 샹들리에를 매단 천장, 대리석으로 만든 테이블 등 궁전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카페는 개장 이래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커피 외에도 샤베트, 음료수, 다과 등을 팔았던 이곳에는 그날 있었던 뉴스를 벽보로 붙여 볼 수 있게 한 서비스로 만족도를 높였다.

1686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지금도 손님을 받고 있다. 루소, 나폴레옹, 쇼팽과 조르주 상드, 프랭클린, 헤밍웨이 등 각기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르 프로코프를 즐겨 찾았는데 그중에서도 18세기 사상가 볼테르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카페를 너무나 사랑했던 볼테르는 프러시아 프레데릭 왕에게 선물로 받은 테이블을 이 카페에 갖다 놓고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연극을 보고 나면 그 뒤풀이를 겸해 이 카페에 몰려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신의 연극에 대한 사람들의 뒷담화를 듣고 싶었던 볼테르는 성직자 옷을 입고 가발을 눌러 써서 변장을 하고 몰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루소는 볼테르의 카페 사랑에 대해 저서 『고백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볼테르는 폭군과 맞서 싸우듯 치열한 정신을 유지하려고 매일 거의 40잔의 커피를 마시는 걸로 유명하다.”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백과사전을 기획하고 저술한 곳도,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의 독립에 관한 파리조약 협정문의 기초를 쓴 곳도 여기다.

 

파리 최초의 카페인 르 프로코프의 화려한 실내 모습. ⓒMichael Rys in Wikimedia
파리 최초의 카페인 르 프로코프의 화려한 실내 모습. ⓒMichael Rys in Wikimedia

파리에만 카페 3000개 생겨

르 프로코프가 성공하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마다 카페가 문을 열었다. 18세기 후반, 파리의 카페는 3000여 개로 늘어났는데 여전히 이름난 카페는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 많았다. 19세기 후반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인기를 누린 시인들은 이곳의 명소 카페 드 플로르를 즐겨 찾았다. 구시가의 면면을 그대로 간직한 보주 광장에도 빅토르 위고와 알퐁스 도데 등이 즐겨 찾았던 카페 브루고뉴가 있다.

화가들은 몽마르트르 주변의 카페에 모였다. 당시 파리는 오스만 계획에 따라 신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옛 구역들은 헐리고 재건축되면서 시가지가 새롭게 변모했는데, 이 중 생라자르 역과 몽마르트르 사이의 바티뇰 지역에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진보적 젊은 예술가들의 리더격이었던 마네가 새로운 미술을 설파하던 곳은 카페 게르부아였는데 이곳은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상점이 됐다.

파리 남쪽 몽파르나스 지역에도 이름난 카페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는 라 쿠폴, 르 돔, 르 셀렉트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카페 드 라 로통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이름난 화가들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는 언제나 이들 카페에서 지내며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고, 피카소도 자주 찾아와 동료 예술가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샤갈이나 앙드레 브르통도 늘 볼 수 있었던 이들이다. 헤밍웨이나 헨리 밀러도 이곳 카페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글을 썼다.

파리 중심부인 오페라 지역에 가도 이름난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주변에 이름난 영화관과 고급 명품 매장이 있는 이 거리는 최초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영화가 상영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895년 연말에 뤼미에르 형제는 이 거리에 있는 스크리브 호텔 지하에서 돈을 받고 영화를 상영했다. 이 무렵 영화는 신기한 체험이었다. 특히 기차가 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모두 도망치느라 정신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거리를 대표하는 르 그랑 카페 카퓌신과 오페라 광장 바로 앞에 문을 연 카페 드 라 페는 파리 카페 중에서도 품격을 갖춘 카페로 유명하다. 오페라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를 비롯해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그 내부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카페 드 라 페는 오페라가 끝난 후 배우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을 더 보려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이곳 카페를 자주 찾은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스타들이다.

20세기 최고의 미남 알랭 들롱도 단골이었다고 하며,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나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도 파리에 오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인 모파상, 졸라, 지드, 발레리 등이 이곳에서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도 빼놓을 수 없겠다.

 

몽파르나스 로통드 카페 앞에서 장 콕토가 찍은 모딜리아니, 피카소와 문인 앙드레 살몽.
몽파르나스 로통드 카페 앞에서 장 콕토가 찍은 모딜리아니, 피카소와 문인 앙드레 살몽.

 

가난한 예술가, 카페서 위로받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카페 문화의 중심지는 다시 생제르맹데프레로 옮겨진다. 이곳을 대표하는 카페 드 플로르와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레 되 마고, 맞은편의 브라스리 리프 등은 당시로 보면 가장 ‘핫한’ 장소였다. 1920년대부터 브라스리 리프에는 정치가들과 함께 앙드레 브르통, 아라공 아폴리네르 등의 작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이곳에서 초현실주의 예술이 탄생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레 되 마고가 인기를 끌면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등 실존주의 작가들이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1940년께부터는 카페 드 플로르의 인기가 높아져 누벨바그 영화감독들과 신진 작가들이 예술을 논하고 작품을 쓰는 곳이 됐다. 이들이 카페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카페는 부담 없는 금액으로 편안한 공간을 얻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겨울에 난방을 하기 어려웠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늘 따뜻한 카페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 보니 겨울이면 난로와 가까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있었을 것이다.

사르트르와 그의 연인 보부아르는 그야말로 하루종일 생제르맹데프레의 카페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글을 쓰고,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우리의 집은 카페 드 플로르이다.”

당시의 카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준 높은 대화가 이뤄졌던 곳이다. 카페는 수많은 작가들에겐 집필실이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응접실이며 열띤 토론을 별이는 토론장이었다. 우리나라 카페처럼 친구와 만나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파리의 유명한 카페를 다니다 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알랭 드 보통과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반갑더라도 그들이 집필 중이거나 토론 중일 때는 방해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아쉽게도 파리의 카페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60년대에는 무려 20만 곳에 이르던 그 수가 현재는 3만여 곳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카페 하면 담배를 떠올릴 정도로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이제는 금연법이 제정돼 파리에서도 실내에서는 흡연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도 카페의 몰락을 재촉하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 진지한 토론을 하기에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카페에서 풍성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고 해도 파리를 찾았는데 카페만을 찾아다니는 관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리 곳곳을 다니며 관광을 하다 지친 다리가 휴식을 원할 때엔 기왕이면 오늘 둘러본 이들 유명한 카페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파리의 매력을 한 차원 더 깊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휴식을 취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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