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폭력의 시대, 다시 여성을 생각하다’ 국제 학술심포지엄

국내외 학자 일본 역사 왜곡 비판

‘식민지배 책임’ 차원 접근 주장도

 

8월 14일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열린 ‘전쟁과 폭력의 시대, 다시 여성을 생각하다’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월 14일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열린 ‘전쟁과 폭력의 시대, 다시 여성을 생각하다’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초국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제 학술심포지엄 ‘전쟁과 폭력의 시대, 다시 여성을 생각하다’에서 이같이 말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 피해라는 보편적 시각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 피해의 문제 등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참석했다. 행사가 열린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 증언한 지 24년이 되는 날이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위안부 문제는 ‘기억 게임’ 아냐”

이날 참석한 더든 교수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왜곡 시도에 반대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집단성명을 주도한 역사학자다. 성명 운동에 참여한 세계 학자들은 500명이 넘는다.

그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강간 등 성폭력을 전쟁 활동에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뉴욕타임스 보도를 소개하며 전시 성폭력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 피해라는 보편적 시각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더든 교수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서는 “역사는 기억의 게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노담화 이후 위안부와 관련한 문헌 조사와 활발한 연구 활동이 가능했고 많은 연구가 축적될 수 있었으나, 일본 정부가 이러한 고노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나섰다”며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증거를 삭제하거나,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순 있지만 진실을 가릴 순 없다”고 말했다.

또 더든 교수는 “일본의 고노담화 발표는 전시 성폭력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일본이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희석시킨다면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고립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시민들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아베 정권의 역사왜곡 시도를 반대하는 대다수 일본 시민들과 협력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위안부 문제가 역사에 선례가 없을 정도로 폭력이었다는 점과 오늘날 IS 집단 강간소 등 전시 성폭력과 같은 맥락이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전시 성폭력보다 식민 지배 책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목받았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의 전쟁이나 내전 중 일어난 강간 등과 달리 일본군 위안부는 하나의 제도로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성노예 동원과 위안부 운영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식민지 책임이 있다”며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전쟁 책임이라는 틀이 아닌,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점이 더 부각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카노 도시오 도쿄외대 교수도 ‘전쟁 책임론에서 식민지 책임론으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일본이 전후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해 망각했으며 위안부 문제 역시 식민지 지배가 빚어낸 국가 폭력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전시포로·비전투원·민간인에 대한 다양한 잔학 행위, 전시 강제 연행·노동,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이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년 전 첫 위안부 증언 보도 후 살해 협박까지

행사에는 24년 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최초 보도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도 참석했다. 그는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우익의 비방과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며 자신을 ‘위안부 날조 기자’라고 몰아세우는 세력에 맞서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기 사흘 전인 1991년 8월 1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통해 할머니의 증언을 한국 언론보다 먼저 아사히신문에 보도했다. 이후 그는 24년간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날조기자’ ‘매국노’라는 비난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 우익 성향 주간지 슈칸분슌이 “우에무라 기자의 위안부 증언 기사는 날조” “날조 기자가 교수직에 임용됐다”고 보도한 뒤 협박은 더 극심해졌다고 한다. 그를 임용한 대학에 일 주일간 250여 통의 항의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지면서 결국 임용이 취소됐다. 게다가 17세인 딸의 신상이 인터넷에 노출됐으며, 딸이 다니는 학교에 “반드시 찾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까지 도착했다. 혐한 만화에도 그를 직접 비난하는 내용이 등장해 늘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일본 내 극우세력이 그를 ‘날조 기자’라고 몰아세우는 데 대해 24년 전 썼던 기사를 직접 읽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시 기사에 ‘위안부’가 아닌 ‘여자정신대’라고 쓴 것에 대해 “당시 한국에서는 위안부를 지칭하는 말로 정신대를 썼고, 일본의 다른 언론들도 같은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모가 한국인이고,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간부여서 위안부 기사를 썼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국인 아내와 알기 전부터 위안부 문제를 취재했으며 장모 단체를 위해 쓴 것이 아니다”라며 “기사 내용도 당시 보도된 다른 신문과 거의 같다”고 반박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나와 가족, 대학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사법의 장에서 ‘날조 기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며 “나에 대한 공격은 위안부 문제를 없애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용기를 내 고통스러운 체험을 고백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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