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현조씨 “공소시효 폐지” 호소

 

정은희양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항소심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들에게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은희양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항소심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들에게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구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양 사망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49)씨에 대해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11일 대구지방법원 별관 5호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녹취록 일부에 대해 변호인이 동의하여 증거능력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신빙성은 없다고 본다”며 “피해자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가 피고인의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와 다른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이 공범들과 강간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강제추행과 무면허 운전에 대한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 부당 주장에 관해서는 원심이 선고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 등의 형이 너무 가볍거나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며 “집행유예와 함께 보호관찰, 전자장치 조치도 정당하다고 본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 아버지 정현조씨는 법정 맨 앞자리에 앉아 항소 선고 결과에 주목했다. 재판을 마치고 법정 앞에서 정씨는 옆으로 맨 검은색 책가방 안에서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자료들을 하나둘 꺼내며 호소했다.

정씨는 “처음부터 범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딸을 위해 17년 동안이나 동분서주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며 “우리 가족 가슴에 맺힌 한은 어디서 풀어야 하나. 대구검찰청이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부실 수사와 공소시효에 발목이 잡힌 것을 보며 오히려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이 쌓였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 공소시효가 폐지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1998년 10월 17일 대학생이었던 정은희양은 오전 5시 30분에 학교 축제를 끝내고 귀가하던 중 대구시 달서구 구마고속도로에서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교통사고 사망으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15년 후 성매매관련법 위반으로 경찰에 검거된 스리랑카인 K씨의 DNA가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같은 해 9월 K씨를 특수강도강간죄로 구속기소 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됨과 증거 부족으로 1심 재판부는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이 다른 두 명의 공범과 함께 강간범행만 한 게 아니라 강도범행도 했는지 여부에 있다. 사건이 공소 제기된 시점이 사건 발생 후 이미 10년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 이뤄지려면 사형제가 포함돼 있어서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가 인정돼야 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K씨의 해당 혐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하고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뒷받침할 새로운 증인을 내세워 검찰진술조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인이 장소와 방법, 당시 옷차림, 피해자에게 어떤 물건이 있었고, 그 물건을 가지고 어떻게 했는지 세부적으로 진술한 것과 관련해 “비록 그 사건이 평범한 경험은 아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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