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북캉스 어때요

설렁설렁 빈둥빈둥 여름휴가 대신 책 읽기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 치유

 

23일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3일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만큼 나은 곳은 없더라.”

중세시대 교부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이다. 휴가는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이다. 이런 귀한 시간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보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김별아 작가는 여름이면 이열치열로 대하소설을 읽는다. 평소에도 머리맡에 늘 서너 권쯤 책을 놓고 난독하는 스타일인 그는 “여름휴가 때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독서를 통해 먼 곳, 낯선 세계

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며 “책 읽기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저렴한 여행”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여행하기가 힘들다고들 하지만 책은 함께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벗이라는 것이다. 김 작가는 “책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만날 수 있고, 가장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를 따돌리거나 배반하지 않는 좋은 벗”이라고 덧붙였다.

북캉스란 ‘북(book)’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독서를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사람을 말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한적한 곳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점에서 여름휴가 대용으로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굳이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사람들이 주변을 채워도 상관은 없다. 피서지에서 한 권의 책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설령 책을 읽다 더위에 지쳐 스르르 잠이 들어도 좋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만은 내게 구석방이 아닐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던 중산층도 세상살이가 힘들어졌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책읽기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컴퓨터가 갖고 있는 정보의 저장과 보관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유일하게 컴퓨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삭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핵심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곧바로 망각하는 능력인데 그런 능력을 키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피서철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자신이 속한 일상에서 벗어나 깊고 여유로운 독서를 해보라고 권했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책들이 주는 뜻밖의 실용성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인은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보다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인물의 평전이라든가 『사기열전』 등의 역사서를 탐독하기를 권했다.

 

24일 서울도서관에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일 서울도서관에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주부들에게는 육아나 교육, 재테크 서적보다 『그리스인 조르바』 『보봐리 부인』 등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고전을 추천했다. 김 작가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하루쯤 휴대폰을 끄고 맨몸인 채로 도서관에 가서 서가에서 마음껏 빈둥거려 보기를 권한다”고 했다. 독서를 의무로 하기보다 심심파적으로 책을 뒤적거리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어떤 책도 좋고, 책 전체를 독파할 필요도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다 보면 심심해서 무어라도 하고 싶어진다는 얘기다.

장 평론가는 자녀 양육에 바쁜 주부에게는 『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니콜라 테슬라 평전』을 추천했다. 일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돈키호테』를 추천한 그는 “세상에 순응하지 마라. 세상과 더불어 살되, 그것에 끌려가지 마라. 돈키호테처럼 때론 세상을 거스르며 살 준비를 해라. 그래야만 직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돈키호테처럼 야성을 잃지는 마라”고 당부했다.

장 평론가는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요리가 대세여서 추천한 것은 아니다. 공지영 작가도 요리 유행에 편승에 이 책을 쓰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며 “다만 공 작가가 딸에게 건네는 살가운 조언, 때론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과도 같은 격려가 마음에 든다. 딸에게 권하는 요리도 실은 자녀들과 함께 요리해 먹어보고 싶은 것들로 충만하다”고 말했다.

테슬라모터스, 록그룹 테슬라, 심지어 게임에 등장하는 테슬라까지 테슬라라는 이름이 대중문화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왜 테슬라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니콜라 테슬라 평전』은 테슬라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왜 사용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다.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더더욱 이상주의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의 상상력을 함께 배워보라는 것이다.

한 소장은 소설 세 작품을 추천했다. 『나오미와 가나코』, 『오베라는 남자』, 『황금방울새』다. 세 권 모두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한번 집어들면 끝까지 읽어낼 만큼 흥미롭다. 가족이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독서의 지혜라는 게 30년 차 출판인인 그의 조언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가정폭력이라는 식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해서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한 소장은 “오베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책을 읽는 독자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방울새』는 상실과 집착, 운명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책이다.

피서철에 바캉스 대신 손에 집어든 책을 완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소장은 “일단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찾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는 “완독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야 바캉스 같은 독서를 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좋아하는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잠자던 뇌를 깨우기 위해 만화를, 정신이 맑아졌다면 인문서도 좋다. 지하철에서는 묵직한 내용의 책보다 가벼운 에세이를, 잠들기 전 침대에서는 시집을 한 권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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