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부르는 범죄의 시작이지만
벌금 8만원짜리 경범죄 취급
‘스토킹 처벌 특례법’ 마련해야

 

일러스트 이재원 ⓒ여성신문
일러스트 이재원 ⓒ여성신문

지난해 12월 대구 동구에서 김모(37)씨가 전 남자친구 노모(37)씨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앞서 7개월 전 지인 소개로 노씨를 만나 사귀다 헤어졌다. 그때부터 노씨의 과도한 집착이 시작됐다. 노씨가 계속 집으로 찾아와 “사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견디다 못한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전날에는 김씨가 직접 지구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의 집에 찾아가 노씨를 지구대로 임의동행한 뒤 별다른 조치 없이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스토킹 범죄가 단순한 짝사랑이나 구애 행위가 아니라 살인을 부르는 범죄의 시작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스토킹을 범죄가 아닌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로 보는 경찰의 인식 수준과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사법 체계의 문제도 한꺼번에 드러낸다. 살인 사건이 있기 전에 피해자가 세 차례나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행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으며, 가해자를 임의동행한 뒤에도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없었다.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법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전주지법 형사2단독(오영표 판사)에서 내린 스토킹 범죄에 대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전주지법은 이별 후 여성의 반라 사진 등을 여성의 집 근처에 뿌리는 등 스토킹 행각을 벌인 남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5월에도 10년 전 헤어진 여성에게 “죽여버리겠다”는 등 20여 일 동안 87회에 걸쳐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여성이 키우던 개 두 마리까지 죽인 남성에게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물론 스토킹은 현행법 아래서도 범죄로 취급된다. 2013년부터 시행 중인 ‘경범죄처벌법’은 스토킹 유형 중 하나인 ‘지속적 괴롭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신고를 해도 경범죄로 분류돼 처벌은 8만원의 범칙금이 고작이다. 처벌 수준이 낮다 보니 가해자의 재범 의지를 꺾지 못해 급증하는 스토킹 범죄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초기 대응이다. 스토킹이 시작됐을 때 적절히 제재해야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으로 인한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만 다른 사안에 밀려 매번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스토킹 방지법안’, 새정치민주연합 이낙연 의원이 ‘스토킹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같은 당 남인순 의원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스토킹 처벌 특례법)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표류 중이다. 여성단체들은 이 가운데 ‘스토킹 처벌 특례법’에 힘을 싣고 있다. 이 법은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경찰이 즉시 현장에 출동해 가해자에게 스토킹 중단과 주거지나 직장에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접근 금지의 경우, 경찰이 조치한 후 법원에 승인을 얻는 방식으로 피해자 보호 체계를 갖췄다. 법을 정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경찰의 인식이다.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취해야 보호체계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한편 2011~2013년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스토킹 피해자 240명의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토킹 가해자 93.8%가 ‘아는 사람’이었다. 스토킹한 목적은 일방적 구애(31.7%)와, 연애종료 후 만남 요구(30.7%)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 스토킹 상담 통계에서도 스토킹 범죄의 70.7%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했다. 2013년 3월 경범죄 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해당 법으로 처벌된 스토킹 가해자는 50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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