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의 첫 출근지가 정해지고, 지도교수님이 걱정스레 꺼내셨던 말씀 중 하나가 ‘옷은 있느냐’였다. 유사 이래로 화려한 장신구와 갖춰 입은 복장은 상류층의 상징이었다. 지배 세력은 특정한 색깔이나 문양 등에 의미를 부여해서 특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그 복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외관만으로도 결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벼슬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왕족과 귀족, 평민, 천민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옷을 입음으로써 스스로의 위치를 내면화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개인은 옷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복장을 통한 규제와 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요구에 따른 복장의 대표는 유니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2월 아시아나항공의 복장 규정에 대해 “여성 승무원에게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고 용모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한 것은 ‘아름다움’과 ‘단정함’이라는 규범적인 여성의 모습과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여성을 전제하는 것으로, 성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여성 승무원이 바지 근무복도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할 것을 아시아나 항공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 권고 결정에 대해 “여성 노동자의 모집·채용은 물론 고용관계 속에서도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용모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성차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6월 16일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의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이로 인해 2015년 6월 28일 퀴어퍼레이드가 가능해졌다.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해 “법원이 반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선정적 퍼포먼스를 허용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레이스나 시스루 의상 등 예쁘고 시원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된 지금, 퀴어 퍼레이드가 선정적이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이 주로 찾는 놀이동산의 퍼레이드 복장이나, 월드컵 때마다 볼 수 있는 브라질 축제 의상과 비교해도 선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차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를 뜻한다(‘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참조). 불리한 조치가 성별 등 절대적 차별 금지 사유로 인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다른 성별, 인종, 연령 또는 다른 절대적 차별 금지 사유와 관련하여 반대 상황에 있었더라도 불리한 대우를 받았을지’가 될 수 있다(‘유럽 차별금지법 안내서’ 참조).

신체를 노출하고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고 일방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화장을 하고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의상을 입은 남성만이 선정적이고, 그래서 퍼레이드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만이 (이성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성차별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인의 옷과 외모를 규제하는 것은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외적으로 규제하려는 의도를 전제로 한다.

항공사의 이미지는 승무원의 치마나 화장이 아닌 비행서비스의 안전성과 정확성, 편리성, 경제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만의 하나 항공사의 이미지가 승무원의 치마에 의존해 유지된다면, 회사는 최소한 승무원의 회사에 대한 기여를 좀 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의 훌륭함은 그 사회가 그 구성원을 얼마나 온전히 보호하는지, 얼마나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예쁜 옷과 예쁜 사람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몸을 옥죄는 옷, 구두, 화장, 수술을 통한 변신이 예의가 되어버린 사회란 얼마나 무례한가.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을 당하면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논어 팔일편)”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