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로비전광판에 메르스 전용 24시간 콜센터 안내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로비전광판에 메르스 전용 24시간 콜센터 안내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병원이 병을 만든다! 꽤 오래전에 이반 일리히라는 교육혁명가가 한 말이다. 일리히 자신도 그랬을 테고 거기에 공감한 이들 역시 이 아포리즘을 다소 포괄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의료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사람들은 점점 더 의존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스스로를 돌본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자연히 면역계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치유는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불치병 하나가 치유되면 또 다른 불치병이 등장한다. 결국 병원이 많아질수록, 병원시설이 좋아질수록 병은 점점 늘어만 간다. 대략 이런 정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진짜로 병원이 병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예컨대, 슈퍼박테리아는 오직 병원에서만 존재하는 세균이다. 백신도 없고 상당히 치명적이다. 그런가 하면 과잉 검진이 병을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갑상샘암이 그랬듯이,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되는 종양을 찾아내 절개를 한 다음 평생 약을 먹게 하는 식이다.

이쯤 되면 병원의 역할에 대해 깊은 의혹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가 이런 심증에 확실한 물증을 제공하고 말았다. 보다시피, 메르스가 가장 ‘애호하는’ 장소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이다. 게다가 의료진이 메르스에 가장 취약했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병원이 바이러스의 온상이며, 또 방역의 선봉에 서야 할 의료진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이 지독한 역설! 일리히조차도 ‘놀라 자빠질’ 노릇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한다는 사실에. 지역에도 병원이 많고 또 서울만 해도 대형병원이 수두룩하다. 한데 왜 꼭 삼성병원이어야 하지? 기계나 설비, 의료진이 최고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의 경우다.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드나들고, 특히나 응급실의 경우 수천 명이 운집하게 되면 그런 수준을 유지하려야 유지할 도리가 없다. 당연히 시스템이나 기계시설이 ‘오작동’하기 십상이다. 또 그런 환경이라면 과로에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연히 의료진의 면역계는 다운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병원’이 바이러스에겐 ‘최적의 장소’가 되어버린 셈이다.

아울러 병원이나 방역 당국이 제시하는 예방수칙이란 것도 참 ‘거시기’하다. 손을 자주 씻어라, 마스크를 써라, 기침을 할 때는 손으로 가려라 등이 전부다. 사스 때도 그랬고, 신종플루 때도 그랬다.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현대의학이 내놓을 수 있는 처방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사람들이 히스테리에 가까운 과잉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적어도 수준 높은 의학이라면 터무니없는 불안에 빠지지 않고 일상의 리듬을 담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자가치유책(의식주 전반에 걸친) 정도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튼 메르스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대형병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병원이야말로 ‘병을 만드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 면역력에 관한 한 현대의학의 처방은 참으로 ‘빈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몸과 병, 치유와 일상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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