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연말정산 환급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정부가 보완대책을 내놓으면서 잠잠해졌지만 상당 기간 내홍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신문에서는 헤드라인으로 ‘근로소득자 절반, 세금 안 낸다’라는 기사를 내 놓아서 유심히 읽어봤다. 내용인즉슨 환급제도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 근로자의 비율이 2009년 40.3%에서 2013년 31.3%로 지속 감소하다가 2014년에는 연말정산 보완 대책으로 인해 48.0%로 급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부유층 증세를 반대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상위 1%가 내는 소득세가 전체의 약 45%” “우리나라는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높은 편” 등의 표현은 이와 관련해 최근 몇 년간 기획재정부가 주로 언급한 것들이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일부 맞다. 우리나라 헌법 제38조에는 납세의 의무가 규정돼 있다. 이는 소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 소위 ‘국민개납주의(國民皆納主義)’를 말하며, 세수(稅收)가 충분해야 정부 재정이 탄탄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기사나 “우리나라의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정부 발표는 과연 맞는 말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먼저 근로소득자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14.8%이다. 상위 1% 소득자의 소득세는 전체 세수에서 약 6.7%로 이들의 소득세가 전체 소득세의 45%라는 표현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직접세인 소득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고, 간접세의 비율이 높다. 즉, 거의 대부분 국민이 부담하는 부가가치세(10%)는 전 세계 대비 높은 편이며, 특히 담배는 74%, 휘발유는 58%, 맥주는 53%나 세금으로 낸다. 유류세나 담뱃세와 같은 간접세는 대표적인 서민 조세인데, 이 비율이 전체 세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근로소득자의 48%가 연말정산 환급 등으로 소득세를 돌려받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 많은 세금을 간접세의 형태로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높다는 표현도 잘못됐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대 65%까지로 명목세율은 높다. 그러나 기업 상속 시 각종 공제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실효 세율은 대단히 낮다. 또한 시장 질서를 흐리는 편법 상속에 대해 제대로 단속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주식부자 1, 2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런데 9조원에 이르는 이재용 부회장의 상장주식 보유액은 대부분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으로, 9조원의 천문학적인 부를 세습하면서 납부한 증여세는 고작 16억여원에 불과했다. 1만원 중 약 1.78원을 증여세로 낸 것이다. 물론 다른 재벌 대기업의 경우도 자녀에게 부를 세습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증여세와 상속세를 피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를 제대로 단죄한 적은 거의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부의 편중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잡코리아의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취업 준비생이 희망하는 첫 월급은 평균 199만원으로 나타났다. 실제 첫 월급의 평균은 약 170만원이다. 이들이 월급을 아껴 매달 100만원씩 적금을 하면 매우 성실하게 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현재 시중금리 중 매우 높은 편인 적금금리 2.5%를 적용한다면, 매달 100만원씩 모아도 1억원을 모으려면 약 7년8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1억원이 넘는 예금을 보유한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어린이가 859명이나 됐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서 8년간 소득의 약 59%를 저금해야만 예금액이 1억원이 생기는데, 859명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일부 어린이들은 이미 예금만 1억원을 증여를 통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타고난 계층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희박하다면, 대다수의 국민은 열심히 일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세습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일부 특급 부유층들은 당장 자녀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줄 수 있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외된 청년들이 삶에 대한 열정을 갖지 못하게 되면 나라 전체의 성장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악순환의 고리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국민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인재를 키우려면 먼저 세금을 공정하게 부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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