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북 부안 해창 앞바다의 새만금 갯벌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
지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바다가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장관이
냐 싶으랴만,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새만금 갯벌에는 갯벌
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세운 백여 개의 장승이 바다를 가로지르
고 있는 방조제 앞에 갯벌 지킴이로서 당당하게 우뚝 서서, 처연하
고도 비장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것은 언뜻 보면 큰 규모의 갯벌 조각공원 같아서 뭇 사람들의 시
선을 끌지만, 가만히 눈여겨 보고 귀 기울이면, 그 많은 장승들은 짱
뚱어와 백합과 게와 실지렁이 등 갯벌에 사는 뭇 생명들의 비명과
아우성, 조상 대대로 갯벌 위에서의 고단한 노동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낸 부안 사람들의 분노와 절절한 바람들을 토해내고 있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낸 하구 갯벌인 새
만금 갯벌은 세계적으로도 그 희귀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고,
노랑부리 저어새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의 도래지이며 백합 등의 조
개류부터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한 생물들이 터를 잡고 있는 생명
의 보고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은 단순히 생태적으로
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대에 걸쳐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고
기를 잡고 소금을 구워 자식을 공부시키고 사는 부안 사람들의 소중
한 생존의 터전으로서 또한 소중하다.
지금 새만금 갯벌은 무려 2조2천3백 여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투입
되는 거대 간척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노태우 정권의
선거 공약으로 시작되어 시작부터 부안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반민주적 토대를 가진 이 사업은, 끊임없이 환경 전문가로부터 그
타당성에 대해 지적받아 왔는데도 전혀 아랑곳없이 진행되어 10년이
흐른 지금 33km에 이르는 방조제 중 19km의 방조제가 완성된 상태
이다. 간척사업의 성과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사람들
은 이 엄청난 사업을 중단하기는커녕 더욱 박차를 가하려 하고 있
고, 갯벌을 메우기 위해 부안의 그 아름다운 석산의 돌들을 마구 파
헤치는 등, 새만금 갯벌은 하루하루 죽음을 행해 이끌려가고 있다.
과연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하는 간척사업으로 누가 어떤 이익을 얻
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업으로 누가 어떤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서해안 간척사업이 이 좁은 국토
의 지도를 바꾸는 위대한 사업이라고 배우고 자랐다.
그러나 왜 지도를 바꾸어야 하는지, 간척을 위해 사라지는 갯벌과
그에 기반해서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삶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묻
고 배우기 전에, 그 사업을 추진하는 힘들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그
사업이 경제성장에 엄청나게 이바지한다는 성장 지상주의를 체화시
켜야 했다.
그러나 자연세계를 무차별하게 변형시키고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고 한 사회의 진보라고 여기면서 면밀한 검토 없이 국가가
나서서 진행했던 그 많은 국책사업이 가져온 파탄과 재앙은 우리나
라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보이고 있다. 그래서 독일 등 환경 선진
국은 시멘트 덩어리를 뜯어내고 다시 자연하천을 만드는 사업들과
원자력발전을 중단하고 풍력 등 자연 에너지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
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처럼 간척사업을 적극 추진해왔던 네덜란드는 이
제 메웠던 갯벌의 돌맹이를 다시 들어내는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논바닥에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골프장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는 등 이 땅의 농업 기반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
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 위대한 ‘농업 기반’을 조
성한다는 것은 사업 명분으로서도 모순 그 자체이다. 수억 년의 진
화 과정을 통해 새만금 갯벌에서 생명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수많은
뭇 생물체들의 가치를 무시하고, 또한 그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고
단하지만 살아 있는 노동으로 삶을 이어온 어머니들의 삶의 기반을
파괴하고 희생시키는 것으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도 새만금 갯벌에는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뭇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굳센 의지로 갯벌 지킴이 장승들
이 우뚝 서 있다. 우리도 그런 지킴이 장승 하나를 마음속에라도 굳
게 세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