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스마트폰에 고개를 떨군다. 빽빽하게 밀집된 지하철 안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인다. 기차는 더 심하다. 구수한 사투리, 오가는 수다 등은 고사하고, 전화 통화라도 할 양이면 곧바로 역무원이 출동한다.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 뭔 피해? 사람들이 모이면 왁자하게 떠드는 게 정상 아닌가. 예전에 기차는 일종의 ‘작은 장터’였다. 맘껏 수다를 떨 수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귀동냥하는 즐거움도 꽤 쏠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막강산’이다. 대중교통이 이럴진대, 다른 공간이야 말해 무엇하리.
그렇다고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건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눈도 손도 마음도 다들 바쁘다. 수많은 말들이 어지럽게 오가지만 다만 소리가 없을 뿐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것이 SNS의 세계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말을 잃어간다. 말을 주고받는 것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말을 잃으면 청력도 약해진다. 듣는 만큼 말하고, 말을 해야 또 들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자 동력이다. 산다는 건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나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하기 훈련이라? 참 어색한 표현이다. 살다보면 ‘말빨’이야 절로 느는 법인데 웬 훈련? SNS의 등장 이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상태로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어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말보다 터치가, 스토리보다 이미지가, 청각보다 시각이 신체를 완전히 잠식하고 말 테니까.
말을 하려면 신장과 심장, 폐의 삼중주가 필요하다. 고로, 운동을 하면 몸이 활발해지듯이, 말도 신체적 역량을 키우는 중요한 활동이다. 따라서 말을 하지 않으면 이 기운들은 순환되지 않고 어디선가 고인다. 이건 몹시 위험한 징후다.
“아이들은 목소리와 귀기울여 들어주는 귀를 필요로 한다. 만일 아이들에게 배출구가 없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은 입을 꼭 다물게 되고, 그들의 재능은 썩는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아이들이 말을 하도록, 그래서 그들의 가슴을 열도록 격려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발산할 다른 방법을 배울 것이고, 이 에너지는 그들을 파괴할 것이다. 아이들은 말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그들 내부의 독소를 방출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게 해준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을 때,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과 경험은 내부에 머물게 되고, 그들의 삶을 오염시킨다.”(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북미 인디언의 지혜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순환되지 않은 기운은 담음이 되고 어혈이 된다는 것을. 소리 없는 아우성은 결국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나를 파괴하고 타자를 증오하는! SNS는 전 세계를 다 연결해 주었지만 우리의 삶에서 소리를 빼앗아버렸다. “이로움과 해로움은 서로를 불러들인다”(장자)는 이치가 이런 것이리라. 그러니 그 침묵의 역습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소리를 해방시켜야 한다. 말과 소리의 향연, 그것이 곧 삶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