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공정이 최상의 해법

국무총리를 포함한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통령 최측근 실세들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가 한국 정치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크게 3가지 쟁점이 대두되고 있다. 첫째, 이완구 총리의 거취 문제다. 이 총리는 2013년 4월에 성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총리와 비서실장에게 거취를 결정하라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정쟁으로 가지 않길 바라고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1야당으로서 지나친 발언은 자제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인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는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도덕성과 공직의 작동 원리로 봤을 때 (이완구 총리 체제는) 작동 불능 상태로 갔다고 본다”면서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총리는 그동안 부적절한 처신과 발언, 잦은 말 바꾸기 등으로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 총리는 구체적인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거취를 정해 당과 정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따라서 이 총리는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리를 내놓겠다”는 것이 바른 처신이다.

둘째, 검찰 수사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특검으로 갈 것인지의 문제다. 이번 사건에 쏟아지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려면 검찰 수사로는 부족하다. 이를 의식해 김무성 대표는 15일 “검찰 수사로도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먼저 나서서 특검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특검에 대해서는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여당은 기존 상설특검법에 따라 실시하고, 야당은 새로운 특검법을 만들거나 야당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이 사건은 결국 특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파문의 특성상 특검보다 오히려 검찰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서 그 결과를 밝히는 것이 해법이다. 야당이 과거와는 달리 특검보다 검찰 수사를 지지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이번 파문이 대선자금 문제로 확대돼야 하느냐의 문제다. 김무성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가 지난 2012년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자 “대선자금에는 여야가 있으며, 야당도 조사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야당은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라고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총리도 “기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겠지만,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측면에서 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은 검찰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번 수사가 대선자금 문제로 번져 끼워 맞추기식으로 변하면 여론은 악화되고 정국은 급랭할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내에서는 총리가 사퇴하면 ‘성완종 리스트’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고, 국정 공백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여당은 위기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라’(back to the basic)는 충고를 깊이 새겨야 한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조렸다. 한국 정치에 4월은 정말 잔인할 달이다. 계절은 봄인데 국민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정두언 의원은 새누리당 원조 쇄신파 모임에 참석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미증유의 메가톤급 부패 스캔들로 한국 보수의 봄날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야흐로 낡은 보수의 시대를 끝내고 중도·혁신의 신(新)보수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아주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이제 한국 보수는 통렬한 참회와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의 자세로 새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완종 파문’이 보수 혁신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대변혁을 이뤄내는 계기가 되길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