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웃는 아빠 캠프’에 참여한 아빠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일생활균형재단
지난해 ‘웃는 아빠 캠프’에 참여한 아빠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일생활균형재단

“집에 아무도 없어요?” “여기 아빠 있잖아, 아빠가!” “엄마는요?”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혼자 집에 있을 때 학교 다녀온 둘째 아이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아이 생각에 아빠는 특히 평일 낮 시간에는 없는 존재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아무도 없는 거다. 그동안 직장에서 대부분 주 6일제로 근무하고, 늘 야근과 회식으로 늦게 퇴근해 아이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에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쉬는 날 가끔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안일을 거든다고 했지만 집안에서 아빠의 역할과 존재는 미미했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가정은 맞벌이가 대세이고 여성의 사회참여는 늘었으나 아직도 여전히 가사와 육아는 대부분 아내 몫이다. 2009년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의 가정관리 시간은 아내가 2시간38분인 데 반해 남편은 24분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비맞벌이 남편의 19분에 비해서도 단지 5분 많은 것에 불과하다. 곧 발표될 2014년 조사 결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아이는 부모가 함께 키운다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 아빠가 달려가려고 하면 사람들은 엄마는 지금 뭐하는지를 궁금해하고, 직장에서 엄마가 달려가려고 하면 ‘저래서 여성들은…’ 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결국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려면 이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가족 가치가 필요하고 그것도 남성들이 솔선해서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이런 가족 가치의 전환을 남성이 적극적으로 유도해 주도록 방송도 일조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다. 이것은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아빠들의 육아와 가사 참여가 ‘남자 망신’이 아닌 ‘가장 트렌디한 아빠’라는 인식 변화로 옮겨지는 데 도움을 주고 있고 아빠들의 육아와 가사 참여가 현실에서 보다 더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된다.

하지만 남성들의 참여 확대가 실질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대한민국의 일터 환경 전체의 변화와 일·가정 균형에 대한 적극적 공감이 필요하다. 즉, 환경 변화 없이 주어지는 아빠 역할에 대한 개인적 인식의 변화는 남성들에게는 죄책감만 갖게 할 수 있다.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집에 오고,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 아빠들에게는 남들 다 하는 트렌디한 아빠란 무리일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일하는 엄마들이 갖던 부담감이 아빠들에게도 옮겨가는 것과 같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정부도 맞벌이 부부들의 일·가정 균형을 위해 아이돌봄 서비스, 공동육아나눔터, 건강가정지원센터 아버지 교육 등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방송과 정부 정책으로 앞장서 새로운 가족 가치, 새로운 가족 생활 모습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장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은 많은 국민이 실제 선택하고 적극 참여하는 생활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새로운 가족 가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족의 실생활에 이제 남성들의 참여를 늘려가야 한다. 남성들도 이제 방송을 따라해 보고 정부의 가족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해보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보다 관심을 갖기 위해 부모 교육에도 참여해보자. 육아휴직을 적극 활용하고 이를 신청하는 동료 남성을 응원해 직장을 가족친화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자. 이웃과 함께 어울려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마을 가까운 곳의 공동육아나눔터를 찾아가 보자.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새로운 가족 가치, ‘가사남편과 육아아빠’, 이것은 ‘나’의 참여, 특히 남성의 변화로 우리 가족 생활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다시 좋은 부메랑으로 남성인 ‘나’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주고, 자녀와도 더욱 친근한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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