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작년 7월 동성 결혼 직원도 복지 혜택 제공 결정
러시아 "각국이 스스로 규범 정할 권리 존중해야"
'반(反)동성애' 기조를 유지해 온 러시아가 관련 유엔 내규에 태클을 걸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5위원회는 동성 결혼한 유엔 사무국 직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을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 결의안은 찬성 43, 반대 80, 기권 37로 부결됐다.
해당 결의안은 작년 7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정명령(SG's Bulletin)에 대항해 러시아가 추진했다.
반 총장의 행정명령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에서 결혼한 직원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가족수당 등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직원이 국적을 둔 나라의 동성 결혼 허용 여부에 따라 정했다.
이날 표결 전 러시아의 페트르 일리쉐프 유엔 차석 대사는 "(기존 원칙은) 문화적 차이와, 각국이 스스로 자국의 규범을 정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기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보수적 전통의 정교회 국가로서 '반(反)동성애' 기조를 유지해 왔다.
1993년 러시아는 동성애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2013년 6월 이른바 '반 동성애 법'(Anti-Gay Law)을 시행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게이 퍼레이드 외 동성애 홍보 및 전파(gay propaganda)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이 법은 러시아 보수층과 정교회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사실상 만장일치로 러시아 하원을 통과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동성애 홍보, 전파, 선전 행위는 신앙인들에 대한 모독행위로 간주, 최대 3년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개인의 경우 5천 루블(한화 약 10만 원)이며 언론 등 기업의 경우 1백만 루블(한화 약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에 자유로운 발언의 권리와 집회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해당 법 지지파는 "비전통적인 성적 관계 금지"는 서구 자유주의에 대항해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도 법 적용 대상이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임원, 취재기자들 스포츠 관계자 및 관람객에게도 이 법이 적용되는지를 두고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한편, 이번 표결에서 러시아와 함께 반대표를 던진 회원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이란, 이집트, 인도, 중국, 파키스탄 등이다.
반 총장은 이날 표결에 앞서 동성 결혼 직원에게도 같은 혜택을 부여하는 일이 유엔이 추구하는 평등과 인권보호 등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요 지역국가 대사들을 일일이 만나 이해와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