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삶 얘기하는 아필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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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메나는 그녀의 형부인 테세오 왕에게 강간당한다. 그녀가 그

것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도록 그는 그녀의 혀를 잘라버리게 한다.

그녀는 한 장의 카페트 위에 자수로 그녀에게 일어났던 것을 이야

기한다. 그녀는 그 카페트를 형부의 아내인 언니,프로크네에게 보

낸다.”

이것은 그리스신화의 한 토막이다.

예로부터 바느질, 뜨개질, 직물짜기 그리고 자수는 여성들의 자기표

현수단이었고 그것들을 통해 여성들은 그들의 예술품을 만들어왔

다. 여성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그들의 감정과 생각에 예술적 표

현을 가미하였다. 이런 일들은 그들의 매일의 가사일,논밭일 혹은

도시생활의 일과 함께 병행되어왔다. 도시여성들은 식탁보와 침대보

위에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였고 농촌여성들은 수건, 치마 그리고 축

제복에 아름다운 꽃, 화려한 새들 그리고 인생에 대해 표현했다.

뜨개질, 자수 등은 여성의 자기표현 수단

남미 대도시의 빈민가 여성들은 이 ‘아필러라스’를 통해 자신들

의 곤경, 문제, 걱정 그리고 희망을 널리 세상에 알려왔다. 특히 칠

레의 1973년 군부쿠데타 이후의 아필러라스는 더욱 유명하게 되어

훗날 Ⅷ뭄뼁【? 망명자그룹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인 인권조직들

내에서 희망을 전달하는 작은 사절로서 그리고 독재에 대항하는 저

항과 일상의 증거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아필러라스는 정

치적 무기로서의 여성들의 집단 일기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개인적

인 일기이기도하다.

1974년 칠레의 여성들은 작업장을 만들어 그후 공동으로 그들의 일

상과 저항을 이야기하는 아필러라스를 생산하여왔고 교회조직의 도

움으로 이곳저곳으로 우송하였다. 정치적 죄수들,실종자 가족들 그

리고 미혼모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그들의 작업장을 만들었다. 그리

고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뱉어놓았다(감옥, 맨발의 어린

이, 학살, 공동부엌, 식수부족, 이웃간의 협동 장면등).

원래 아필러라스는 그 뿌리에 경제적 동기가 있다. 부족, 궁핍, 배

고픔에서 시작된 아필러라스는 지금도 가족부양의 작은 수입원이다.

여성들은 우선 빈 냄비를 채우기위해 일을 한다. 그들은 홀로 집

에서 만들거나 여러사람이 함께 공동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때

그들은 각각 한 부분씩 맡아 그들의 곤경 그리고 억압의 경험을 수

놓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슬픈 작품들이 아니다. 강렬한 색,

푸른 나무, 반복되는 안데스산맥의 상징, 이것 모두는 그들의 새로

운 삶의 희망을 전달한다.

73년 칠레 군부쿠데타 이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아필러라스는 이제 칠레나 페루 등 남미에서 관광객들의 주요관심

상품이 될만큼 하나의 새로운 국민예술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

직도 칠레의 빈민가의 여성들같이 그들의 현실상황을 아필러라스를

통해 호소하고자하는 여성들 또한 많이 존재한다.

(지면에 소개된 것들은 몇 년전 독일에서 전시되었던 페루 리마 빈

민가여성들의 아필러라스중 일부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힘든 삶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용기와 운동 또한 거기에 함께하고 있다.

우리에게 매우 낯설어 보이는 이들의 일상생활들은 바로 세계의 모

든 여성들의 삶이다. 때리는 남편에 저항하는 여성, 자녀, 가사 그

리고 경제활동으로 이중 삼중의 짐을 지고있는 여성, 자신과 자녀

들을 위해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호소하는 용기있는 여성 그리고

전세계의 여성들에게 협동의 손을 뻗치고 있는 여성들이 바로 그들

이다.오른쪽 상단의 ‘폭행’이라 제목 붙여진 아필러라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이웃에 한 남자가 사는데 항상 그의 아내를 때렸어요. 어느날

아침 그가 또 구타하자 우리 클럽의 모두가 그녀를 방어했어요. 우

리는 함께 그 남편을 경찰서로 데려갔지만 거기서 그는 그저 충고

만 들었어요.그래서 우리는 그를 공원 한복판에 있는 기둥에 묶

고 그의 목에 ‘결코 나는 내 아내를 때리지 않겠어요’라는 표찰

을 걸어주었어요. 여성들이 함께하면 우리 스스로 제재해 나갈 수

있어요.”)

허향/ 여성신문 독일통신원,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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