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거주 12명 대상 조사 결과
대부분 재경험·회피·과각성 증상 보여

 

갑오년 새해 첫날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수요정기집회를 찾은 시민들이 김복동(89), 길원옥(87) 위안부 피해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신문 DB
갑오년 새해 첫날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수요정기집회를 찾은 시민들이 김복동(89), 길원옥(87) 위안부 피해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신문 DB

“그 생각이 나니까 또 아무리 딴 생각을 안 하려고… 나 세상 태어났으니까 죽는 날까지 깨깟

이 살다가야지 생각을 해도 안 되는 거여.”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A씨, 86세)

수도권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대다수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70년 넘게 세월이 흘러도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마음 속 깊은 상처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일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4월 수도권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건강실태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91.7%(11명)이 반복적으로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거나 악몽을 꾸는 ‘재경험’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건과 관련된 것을 피하거나 외부와 관계를 단절하는 ‘회피’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33.3%(4명)이었으며,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과각성’ 증상은 12명 전원에게서 나타났다. 특히 12명 중 3명(25.0%)은 ‘재경험’, ‘회피’, ‘과각성’ 증상을 모두 경험하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재경험, 회피, 과각성 등 크게 세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이번 조사는 노인의학 전문의, 재활의학 전문의, 간호사, 사회복지학 박사 등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방문건강검진팀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찾아 검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피해 할머니들은 당시 사건을 연상하면 몸이 아프다거나, 사건이 재발되거나 재연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생각 안 하고 싶은 게 아니고 했다하면 내 몸에 해가 오니깐. (몸이 아파요?) 그럼 뭐 생각만 해도 아프죠.” (A씨, 86세)

“하루 빨리 해결 나서 하루 빨리 죽고 싶어. 사는 것도 싫어. 그러니 병원에서 물으면 무슨 병이 있다 무슨 병이 있다. 모르는 게 나아. 알 필요가 없어. 아프면 약 사먹고.” (B씨, 88세)

보고서는 이번 조사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0명에 대한 신체검진도 함께 실시했다. 조사 결과, 고혈압의 경우도 피해자 16명 중 8명(50.0%)은 고혈압 전 단계였고, 3명(18.8%)은 1기 고혈압 범주에 속했다.

골다공증의 경우 16명 중 12명(70.6%)은 연령대별 기준치에 못미쳤으나, 골다공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대상자는 전혀 없었다. 폐 검사에 참여한 14명 중 11명(78.6%)은 호흡기계 이상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사례별로 볼 때, 전반적으로 신체검진상에 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 PTSD 증상이 있거나, 본인 스스로 설문을 통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관련 문제가 있음을 호소하고 있었다”며 “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건강의 문제가 복합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에 대한 보건의료서비스는 개별적이지만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측면까지 고려해 통합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정부 차원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실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어 다음 달부터 대상자 선정 등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편,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3명이다. 평균 연령은 88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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