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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감독을 청와대로, 박찬호선수를 국회로, 선동렬선수는 문화

체육부장관으로..." 젊은이들의 발랄한 재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만치 현실정치에 식상했다는 뜻인지.진흙탕 싸움을 보다가 화끈한

월드컵축구나 LA다저스 경기를 보고나면 기분이 확 풀렸다. 젊은이

들이야 기질상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어있지만 올해는 유달랐다. 대

선정국은 이전투구판이고 경제는 바닥이고 주가마져 땅에 떨어져 어

디 한곳 밝은 구석이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식민지시대 우민화를

위한 3S(SEX SPORTS SCREEN)정책과는 다르다. 국민 스스로 스

포츠로 눈이 갔다. 박찬호의 인기가 오른 것은 물론 잘 던진 때문이

다. 이미 진출해있던 일본의 노모투수와의 은근한 경쟁심리도 작용

했다. 한국의 '작은 거인'이 '진짜거인' 흑인타자들을 요리하는 것도

눈요기였다. 월드컵축구도 일본이라는 요소가 없었더라면 본선진출

의 재미가 반감했으리라.

5공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두환과 이주일의 공통점과 다른점' 맞

추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특정인물을 들어 미안하지만 둘다 공인성

격을 띠고 있어 명예훼손은 안될 게다. 같은 점은 '대머리와 국민을

웃긴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이씨는 밤에만 웃기는데 전씨는 밤낮

웃기고 이씨는 남을 웃기는줄 알고 있는데 전씨는 국민이 웃는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어 '문민'들어서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라는 영화도 있었다. 이상룡씨가 유행시킨 "모유가 우유보다 좋

은 이유"투다. 모유는 설탕이 안들고 보온이 필요없고 촉감이 부드

럽다는 정도의 유머였다.

정치권의 혼미와 월드컵 축구의 대비가 비슷하다. 축구와 선거가

비슷한 점은 우선 '싸움'이라는 점이다. 승패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선수와 감독과 관중이 있다. 자기편이 있어 서로 내기도 한다. 때론

열광한다.

월드컵 축구에서 승승장구할때 시중에선 "요즘 축구보는 재미로 산

다"는 말이 돌았다. 박찬호선수가 연승을 거둘때도. 역시 스포츠가

대통령선거보다 재미있는 가 보다. 그 이유가 몇가지 있다. 우선 축

구는 전국민의 승부지만 대선은 일부의 승리로 끝난다. 축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지만 선거엔 진 쪽의 불만이 남는다. 특히 대일본전이

있으면 본선진출과 관계없이 전국민이 TV앞에 마주앉는다. 특히 이

번 월드컵 예선에선 이미 우리는 본선티킷을 따낸 후라 11월1일의

일본전은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이에앞서 일본이 홈경기서 UAE

와 비기고 난뒤 관중들의 난동을 부리자 오히려 이를 즐겼다. "일본

인들은 질서를 잘지키고 깨끗하고 어쩌고..."하는 소리를 귀에 따갑

도록 들어왔던 터다. '그렇지, 너희도 열받으면 어쩔수 없구나'하는

고소함도 있었다. 일본팬들이 대한국전을 보기위해 대거 서울로 몰

려오자 '질수는 없다"는 오기가 더 났다.

축구는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난다. 축제의 뒷맛이다. 그러나 선거

엔 국가의 향방이 달려있다. 스포츠는 편히 누워서 즐길 수 있지만

선거는 그냥 즐길 수 만은 없다. 올바로 뽑기위해선 각후보의 장단

점과 정책의 실현성을 살펴보아야할 그만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축구는 관중이 작전을 구상할 필요도 없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미리

파악할 필요도 없다. 열성팬들이라면 자신이 이미 감독과 코치가 되

어 작전구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치판은 TV토론을 봐도 신

문을 봐도 정책차이를 잘 모르겠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까지 겹치

면 어느쪽이 옳은 지 내편인지 구분도 안간다. 그 사람이 그 사람같

고. 지겹기도 하다. 몇십년이 지나도 3김씨가 그대로 나오고 몇몇 새

인걋?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스포츠도 작전이 있지만 치사하지는 않다. 상대방 약점을 물고 늘

어지고 폭로하고 '오리발' 내밀고 하는 치사함이 없다. 적어도 그라

운드는 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밀실정치'는 끼어들지 못한다. 월드

컵축구를 보고나서 "정치도 축구만큼만..."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이

제 남은 한달여의 대선전에서 '월드컵본선진출'수준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해본다. 스포츠 안목만큼 국민의 선구안도 높은 수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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