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은 제 팔자예요”
“단청은 제 팔자예요”
  • 엄수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2.26 11:58
  • 수정 2018-02-26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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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시작한 단청 작업, 20년 외길
“문화재 관리, 지금부터 꾸준히 해야”

 

최문정 단청조교가 만봉스님 밑에서 그림을 배운 지 28년이 지났다. 뒤에 놓인 병풍은 2014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문정 단청조교가 만봉스님 밑에서 그림을 배운 지 28년이 지났다. 뒤에 놓인 병풍은 2014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궁이나 향교,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게 단청이다. 아파트처럼 다세대 건물에 사는 이들이 많은 요즘 단청은 옛것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단청이다. 종각역에 있는 보신각에도 조상 비석을 세운 비각에도 단청이 있다. 그 단청을 그리는 최문정(48) 단청조교를 2월 9일 서울 옥수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 단청조교는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기술자 417호다. 26세 때 전수자가 돼 이수자를 거쳐 현재 전수조교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최근엔 문화재 보수 및 단청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문청’을 설립하고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단청과 벽화를 그리며 보낸 시간이 28년이다. 여성 단청장이 드물던 시절, 그저 그림이 좋아 스무 살 대학에 갓 들어간 신입생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절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으로 단청 작업을 한 게 스물아홉 살 때 수안보 흥천사였어요. 건물 여섯 채를 14명이서 넉 달 동안 작업했죠. 첫 작업에 공사가 너무 커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14명 모두 남자여서 인솔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당시 스님 성격이 굉장히 세서 한때는 원망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의 힘든 기간으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모두 떠난 저녁이 되면 절에 혼자 남아 새벽까지 단청을 칠했다고 한다. 첫 단청 작업을 혹독하게 겪은 뒤 그는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작업에 매달렸다.

지금까지 수안보 흥천사를 비롯해 전남 강진 남미륵사, 창덕궁 부용정, 보신각 종각과 지난해 제주도 불탑사 단청 작업을 했다. 불교 그림인 탱화 작업도 했다. 불국사 무설전 지장탱화와 국보 제62호인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벽화를 복원했다.

“가설제를 짜는 것부터 했어요. 건물 천장까지 올라가려면 사다리 갖고는 안 되니까 파이프를 세워서 가설제를 놓거든요. 한번은 파이프에 맞아서 기절한 적도 있었죠.”

그는 28년 동안 단청을 업으로 하는 데 대해 “팔자예요. 팔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불교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스님이며, 서울 신촌 봉원사(태고종)에서 그림을 좋아하던 소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지인 집안의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인 만봉 스님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단청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작은 건물도 14명 인부가 서너 달 매달리는 게 보통이다. 수십일 동안 집을 떠나 일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만큼 밖의 일도 많은데 집에서는 종갓집 며느리다. 그는 “명절 때마다 가족들이 50명씩 오는 집이다. 워낙 일도 크게 하는 편이다 보니 결혼 전 이 얘기를 들었는데 별로 겁이 안 나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성이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만 보고 걸어왔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소문은 무성했죠. 여자가 단청 쪽 일을 하다보니 ‘어떻게 저 큰 공사를 땄지?’ 그런 시기나 질투가 있었다.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니었겠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제가 애인이 한 100명은 있어야 해요”라며 웃었다.

우리나라 단청은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귀족의 등급에 따라 단청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다. 동양 건축미의 정점으로 중국과 일본은 단청을 통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기 전 자금성의 단청을 몇 년에 걸쳐 새롭게 단장했고 일본은 에도시대 때 단청문화재인 닛코의 도쇼쿠를 보존하기 위해 20년마다 단청 작업을 새롭게 하고 있다. 최근엔 교토에 있는 기요미즈테라의 건축단청예술이 전통과 현대미를 동시에 살려 극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단청 자체엔 큰 관심이 없다. 국보1호인 숭례문의 단청 공사의 경우 지난해 10월 부실 시공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급하게 복원하느라 일정과 예산이 부족했던 점이 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단청에 필요한 천연 돌가루를 중국이나 일본, 인도 등지에서 수입을 하는데 값이 너무 비싸요. 이런 상태로는 문화재 건물조차도 천연 안료를 쓰긴 힘들죠. 우리 국보인데 그런 논란이 이는 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는 문화재 보존은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함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무량수전 부석사에 대한 100년 전 신문을 보면 단청이 있어요. 단청을 원래 안 한 것으로 인식하는데 사실 관리를 안 해 떨어져 나가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죠. 100년의 역사는 역사 전체로 보면 짧아요. 문화재 관리를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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