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허슬러’서 남녀 배우 인센티브 달라… 공식적 성차별 여전
“어렵지 않은 역할로 어린 나이에 여우주연상 받는다” 역차별론도
리즈 위더스푼, 배우의 힘 강한 ‘와일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낙점 ‘눈길’

 

여성 중심의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리즈 위더스푼. 사랑스럽고 소중한 할리우드 여배우다.
여성 중심의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리즈 위더스푼. 사랑스럽고 소중한 할리우드 여배우다.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트는 연기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다. 고독과 슬픔, 두려움, 혼란스러움, 평정, 후회, 설렘, 담대함 등 아주 세속적인 감정부터 어떤 극복의 순간까지 진폭이 큰 감정들을 표현해야 하며, 더운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고 눈이 쌓인 산속에서 굴러야 한다. 게다가 과격한 섹스 장면까지 육체적으로도 격렬한 연기를 배우가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의 모든 관계와 사건이 셰릴이라는 여성이 중심이 되며, 이 여성이 겪는 일들과 감정은 모두 젠더적이다. 엄마와의 특별한 관계, 그 상실과 방황, 이를 극복하기 위해 4300㎞의 대자연을 겪으며 느끼는 두려움, 친밀감, 환희는 셰릴만큼 극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여성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여성적인 경험과 심리다. 이 여성 중심의 영화 제작을 주도한 사람은 주연배우인 리즈 위더스푼이다.

셰릴 스트레이트의 동명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은 그는 책의 판권을 사고 제작자가 되어 감독과 각색자를 찾고 주연을 맡았다. 배우의 힘이 느껴지는 이 영화로 위더스푼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라 있다. 셰릴의 엄마역인 로라 던 역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다. 위더스푼은 ‘나를 찾아줘’의 제작자이기도 한데, 이 영화의 ‘어메이징한’ 로자먼드 파이크 역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셰릴 스트레이트라는 역할은 아카데미상을 받기에 충분히 ‘어려운’ 연기일까. 특히 남우주연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는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 질문이 비꼬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소니영화사의 해킹 사건이 드러낸 흥미로운 일들 중 하나는 할리우드가 생각보다 훨씬 ‘공식적으로’ 성차별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메리칸 허슬러’에서 세 명의 남자 배우는 9%의 인센티브를 받고 요즘 제일 잘나가는 제니퍼 로렌스와 영화 속 비중이 가장 큰 에이미 애덤스 두 여자 배우는 7%를 받는다. 남자 배우들은 비중으로도, 인기로도 이 두 여배우를 앞서지 않기 때문에 이 차이는 관례적인 성차별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사실은 제니퍼 로렌스 에이전시의 항의 메일로 드러났는데 그에 따른 소니의 답변은 “제니퍼를 올려주면 에이미도 올려줘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성과급인 줄 알았던 할리우드의 지급 체계가 이토록 성차별적이라니.

 

영화 ‘와일드’
영화 ‘와일드’

성차별 논란을 이어간 것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 아론 소킨의 이메일이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할리우드 내 성차별을 거론한 케이트 블란쳇의 수상 소감에 대한 뉴욕타임스 칼럼에 아론 소킨이 발끈해 이메일을 썼는데, 케이트 블란쳇은 물론이고 전년도 수상자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배우라면 누구나 할 법한 무난한 연기라며, 여배우들은 남자 배우들의 어렵고 다양한 역할에 비해 ‘전혀 어렵지’ 않은 역할로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 수상자가 된다는 주장을 했다. 이른바 ‘역차별’론이다.

40∼50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는 남자 배우들에 비해 20∼30대가 아닌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 아론 소킨이 거론한 역사적 사건이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여성으로 설정한 영화 자체가 드물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지적했다. 타임지의 페미니즘 섹션은 충고했다. “할리우드에 좋은 여성 역할이 없다면, 아론 소킨 당신이 하나 쓰세요”. 그러나 그가 신문 칼럼에 발끈해서 항의 메일을 보낼 열정은 있을지언정 멋진 여성이 나오는 작품을 쓸리는 만무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길을 열어젖히고 다른 여배우들에게도 ‘어려운’ 역할을 갖게 하는 여성 중심의 영화들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리즈 위더스푼은 20대 전성기 영화 ‘금발이 너무해’ 속의 엘르, 그의 첫 번째 아카데미 수상작 ‘앙코르’ 속의 ‘여자친구’ 역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