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신화처럼 이야기 원형에 끌려”
“원하는 것 하지 않으면 끌려가게 돼”

 

황경신 작가는 1월 30일 여성신문과 만나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황경신 작가는 1월 30일 여성신문과 만나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가 황경신(50)의 글에 위로받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강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아픔도 지나가리란 걸 알았을 뿐이라고 했다. “매일 글을 쓰는데 마음 상태가 다 달라요. 어떤 날은 이랬다 또 다른 날은 저랬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할 때도 많아요.”

월간 『페이퍼(PAPER)』로 이름을 알리고 쓴 책만 20여 권. 1월 30일 합정동에서 황경신 작가를 만났다. 밝고 앳된 목소리였다. 황 작가는 지난해 11월 『한입 코끼리』를 낸 데 이어 2월 말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입 코끼리』는 8살짜리 소녀가 보아뱀을 향해 던지는 질문과 대화로 구성된다. “그런데 넌 누구야?”란 첫 질문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이 나서』『눈을 감으면』『밤 열한 시』 등 전작들이 속앓이 하는 동생을 위로하는 언니 같다면 이번 책은 ‘누구나’가 대상이다. ‘뭔가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거야?’ ‘이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해?’ ‘어른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왜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 걸까?’ 등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대답은 주로 보아뱀이 한다. 이들은 18편의 각기 다른 동화를 읽으며 이야기했다. 동화를 소재로 쓴 이유를 물었다. “그림형제의 동화도 오랫동안 구전된 것을 정리한 게 많아요. 신화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전해진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원형을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제가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약간씩 비틀어 놓는 거죠.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찾아라, 그러는데 왜 꼭 그래야 하지? 왜 사람은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거지? 이렇게요. 꿈을 이루기 위해선 뭔가 상대적으로 희생되는 것도 있을 텐데 그렇게 세상과 전쟁을 치르면서 꿈을 이뤄야 하고, 결국 그게 행복일까 이런 생각이오.”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자 20대를 골랐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마 그땐 솔직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나란 사람이 미완성인 떫은 감 같아서 감추다 보니까 어떤 관계도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자신의 20대는 설익었기에 꾸밈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랑을 받는다 한들 만족이 되나요? 안 돼요. 그렇게 껍질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렵고 무서웠어요. 그 껍질을 벗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그는 “그냥 시간이겠죠”라고 되받았다. 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란 시를 말하며 “일흔이 다 된 시인이 견딜 수 없다는 시를 썼는데 그때 큰 위로를 받았다. 오히려 견디라고 하는 것보다 위로가 되더라”고 말했다. 지금의 20대에 대해선 “더 힘들 거예요. 취업도 힘들고 사회·정치·윤리·도덕적으로든 뭐든 지표가 될 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껏 방황할 수도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작가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 계획 같은 건 없었다는 게 더 맞다. 그는 “글로 먹고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다니다가 자연스레 『페이퍼』에서 글을 쓰고 어떤 우연한 계기에 책을 내고 지금까지 온 경우”라고 말했다.

월간 『페이퍼』를 창간하게 된 계기는 잡지사 기자 시절 “왜 내가 관심 없는 사람을 인터뷰해야 하지?”란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소모적으로 느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만 잡지를 만들면 안 되나 했죠”라고 말했다. 

원하는 것을 하는 실천력이 놀라웠다. 그는 글을 쓰는 행위와 책을 읽는 시간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고, 일주일에 2~3권 이상 분야를 불문해 다양한 책을 읽고 있다. 피아니스트나 수영 선수가 매일 연습하듯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고 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짧은 글이라도 하나씩 쓰려고 한다”며 “『한입 코끼리』처럼 장편 작업은 하루에 어느 정도씩 계속 써요. 장편은 호흡을 멈추면 리듬을 다시 찾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페이퍼 때부터 시작해 팬 층이 두껍다. 자신의 글로 어떤 개인적이고 소소한 변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즐겁다고 했다. “제 책을 읽고 어디 여행을 가거나 그림을 좋아하게 되고 다른 화가도 찾아봤다는 얘기를 들을 때 어쨌든 행동하게 하는 어떤 씨앗이 된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아요.”

황 작가의 생활은 단순하다. 읽고, 쓰고, 수영을 가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일주일에 몇 번은 친구들이 놀러오는 집이라고 했다. “저는 일단 일을 줄여요. 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는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하려 일을 선택해야 할 때는 전 안 하는 편이에요.”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쉽지 않다’는 기자 말에 황 작가는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결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질질 끌려가요. 가고 싶은 방향이 이쪽인데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최초 방향과의 차이가 5도라면 나중에 90도가 되는 것처럼요. 그런 식으로 선택을 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매번 흔들리지만 방향키를 잡고 있었다.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건 누군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물었다. 현재 사랑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사랑 없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나요. 쓴다고 해도 무의미하겠죠”라며 씩 웃는다. 그의 책 『밤 열한 시』에 적힌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음을 저울에 달아보는 영리함이라거나 습관에 의지하는 평화라거나 사랑을 절약하여 나를 보호할 계획 같은 것, 가지지 않기를. 소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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