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태박물관은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문화 공간”
“본태박물관은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문화 공간”
  • 박화숙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8.02.09 11:09
  • 수정 2018-02-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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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가 공존
제주 본관과 서울 분관에서 본태아카데미 열어
3월 꽃상여와 꼭두전 열어

 

“‘아, 이것! 예전에 우리 집에도 있었는데’ ‘이건 우리 어머니도 시집 올 때 가져온 것’ 등등. 저희 박물관은 잊고 있었던 지난 추억을 반추하는 반가움에 할머니. 어머니들이 말을 쏟아내는 곳입니다. 전시물 하나하나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점점 더 귀해져 가는 선조들의 목가구, 소반, 보자기 등 소장 민예품으로 3년 전 제주에 본태박물관을 설립한 이행자(70) 설립자와 김선희(41) 관장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박물관으로 특별히 여성이 더 좋아하는 문화 공간이라고 했다.

3월 초 시작되는 제주 박물관(서귀포시 안덕면)과 서울 분관(강남구 선릉로)의 본태아카데미와 제주 박물관의 2015 기획전인 ‘꽃상여와 꼭두전’을 앞두고 고부관계인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이행자 설립자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넷째 며느리이고 김선희 관장은 그의 둘째 며느리다. 시어머니가 40여 년 수집해온 소장품을 며느리가 세상에 펼쳐 보이는 일을 맡고 있는 것.

개관 이후 ‘조선시대 목동자전’ ‘쿠사마 야요이 전’ 등 굵직한 전시로 입소문을 타 제주도민은 물론,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본태박물관은 제주의 풍광과 함께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1995) 수상자인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로 관심을 끌어왔다.

무용을 전공한 설립자 이행자씨는 젊은 시절 미스한국일보였을 만큼 당당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목소리엔 강건한 리더의 힘을 담고 있었다.

학부에서 불문학, 대학원에선 미술사를 전공한 김 관장은 수수하고 차분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본태박물관 전경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본태박물관 전경

- 쉽지만 익숙지 않은 박물관 이름 ‘본태’. 왜 본태(本態·bonte)인가요.

(김 관장) “‘본래의 모습을 탐구한다는 뜻과 함께 우리의 본보습을 보여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리고 프랑스어 봉(bon)에는 좋다는 뜻도 있지만 고어사전에는 베풀다, 너그럽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요. 이름 짓기와 로고는 모두 어머님의 작품입니다. 영문 표기에 대문자를 쓰지 않는 것은 거창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에요.”

- 전통과 현대가 소통하는 박물관이라는데.

(김 관장) “누드 콘크리트의 외관을 드러내는 박물관 건물이 주는 현대적 미감과 소장 전시물의 조화를 들 수 있어요. 제1전시관에서는 우리의 선조들이 썼던 생활 소품들이 전시돼 있고 제2전시관에는 백남준, 피카소의 현대미술 작품이, 제3전시관에는 일본의 여성 조각가인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작품이 있어요. 기획전을 가지는 4전시관에서는 3월 21일부터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 꽃상여와 꼭두전’이 열리고 있어요. 각각의 건물이지만 긴 통로로 이어진 건물 밖에도 현대조각물이 설치돼 있어 안과 밖 모두에서 공존과 소통을 보이고 싶어했고. 또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우리 박물관이 어우러져 제주와 세계인의 소통에도 참여하고 싶은 어머님의 의견이 반영된 것입니다.”

 

지난해 8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본태박물관에서 개최한 구사마 야요이 : 어 드림 인 제주(KUSAMA YAYOI : A DREAM IN JEJU) 전시 작품
지난해 8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본태박물관에서 개최한 '구사마 야요이 : 어 드림 인 제주'(KUSAMA YAYOI : A DREAM IN JEJU) 전시 작품

-서울에 분원을 두면서 제주에 박물관을 세운 까닭은.

(이 설립자) “오래전부터 제주를 좋아해 나이들어 살 곳으로 정해두었어요. 제주공항에 내리면 왠지 외국에 온 듯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재벌가의 며느리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심리적 중압감이 사라지는 행복함도 느낄 수 있었고 한라산과 오름, 탁 트인 바다 등 제주의 산과 물, 바람이 친구가 되는 느낌을 받아서였어요. 박물관 개관 이후 종종 찻집에서 만나는 제주 도민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기도 해 행복합니다.”

(김 관장) 어머님은 거의 매주 주말을 끼고 3~4일씩 제주에 가십니다. 저는 초등생 딸들 돌봐야 하기 때문에 주중 하루에 다녀오지요.

- 시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김 관장) “상황 판단이 빠르시고 추진력, 결단력이 있으세요. 박물관 개관 때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다 어머님의 판단이 정확해 빨리 결정내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현대적 미감을 지니고 계세요. 수집품 하나하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그것들이 모였을 때 보이는 조화로움이 발군입니다. 소장품 도록을 만들 때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였어요. 공간적 감각도 그렇구요. 제주 전시관에 소반을 쌓아 7층 정도의 소반타워를 꾸몄는데 앞면과 옆면을 보여주는 전시 설계는 관객들로부터 단아한 건축물을 보는 것 같다는 칭찬의 평을 많이 듣고 있어요. 처음 만든 도록이 박물관협회 상을 받은 것은 순전히 어머님의 안목 덕이에요. 구사마 야요이 전시회는 도록 제작까지 준비 기간 한 달 만에 이뤄졌지요. 어머님의 결단력으로 이뤄진 거예요. 저는 빠릿빠릿하지 못해요. 느리지만 실수 없이, 천천히 어머니 뒤를 따라가는 스타일입니다.”

- 세 며느리 중 둘째 며느리에게 관장을 맡긴 까닭은.

“(이 설립자) 둘째가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어요. 능력이 된다고 믿었지요. 일찍부터 우리 목가구에 관심을 가졌었고 25년 전 남편을 잃고는 인사동과 장한평 나들이로 쓸쓸함을 달랬어요. 전통 공예품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좋았어요.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는 것보다 손때 묻은 소반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죠. 골동품을 구입한다는 건 연습이 필요해요. 하루아침에 안목이 생기지 않아요. 예상 못 했던 가치를 뒤늦게 발견하는 행운이 있는가 하면 실패도 경험해야 해요. 예전엔 선거철이나 입학 시즌이면 집안에 꼭꼭 숨어 있던 귀한 물건들이 나오곤 했지만 요즘은 개인 소장품이 시장에 나오는 일이 드물어요. 그러니 수집이 힘들지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녀야 비로소 골동품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니까요. 제가 실기에 밝다면 김 관장은 이론에 밝다고 할 수 있죠.”

-본태아카데미는 어떤 곳?

(김 관장) “문화 강좌를 들으며 함께 공부하는 겁니다. 서울 분관에서는 봄학기와 가을학기로 두 차례 전문가를 모셔와 각 8강좌를 듣습니다. 지난해엔 회화, 건축, 사진 등 미술 분야에 집중했고 올해는 생활 중심 강의로 꾸몄어요. 또 제주에서도 11월까지 미술과 생활, 건강에 관한 다양한 구성으로 연중 계획을 짰어요. 지난해 아카데미가 열리는 날이면 어머님은 수강생들을 위해 손수 3종류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곤 했어요. 어머님은 디자인 미감에선 현대적 감각을 지녔는데 음식 나누기 하시는 모습에선 예스럽답니다.”

이때 이 설립자는 “사람들이 모이는 데엔 먹을거리가 푸짐히 있어야 해요”라고 받아냈다.

- 본태박물관과 본태아카데미의 미래 청사진을 그린다면.

(김 관장) “소장품을 자주 바꾸는 전시보다는 1전시관의 전시는 5년 정도 기본 틀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많은 분들이 보실 것 같아요. 그 다음엔 유·불교 관련 전통 공예품을 보일 계획입니다. 기획전시는 4관을 활용할 거고요. 현재 정식 오픈에 앞서 가오픈한 ‘꽃상여와 꼭두전’엔 온전한 형태의 충무상여가 전시돼 있어요. 장례문화의 현대화로 전국에 10여 점밖에 남지 않은 귀한 민예품이죠. 기본 생각은 현재의 틀을 잘 유지하는 것이 성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장품을 잘 보관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아카데미도 수강하시는 분들의 숫자를 늘리기에 급급하기보다 수강하시는 분들과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으려 합니다.”

-재벌가 며느리의 삶은.

(김 관장) “저와 남편은 유치원 동기예요. 대학원 재학 중 다시 만나게 돼 4년 연애 후 결혼했습니다. 세 며느리 중 둘째지만 결혼이 늦은 편이어서 형님보다 두 살 많아요. 동서들끼리 존댓말 해요. 막내는 다섯 살 아래니까 자연히 따라왔고요. 전통 공예품들은 어머님이 늘 곁에 두고 쓰셨던 거라 결혼 초엔 시댁에 함께 살면서도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어요.”

(이 설립자) “시댁은 검소하고 엄한 분위기라 돈이 없어 마음에 드는 공예품을 못 살 때도 있었어요. 집안에서도 제가 민예품에 심취해 있는 줄은 알고 계셨지만 조심스러워 하셨고요. 제가 서울에서 박물관을 열게 되면 떠들썩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어요. 누구네집 며느리로 알려지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제주에서 소박하게 시작하니 모두 ‘잘했다. 너답다’고 하세요. 이제 저는 젊은 관장이 잘 꾸려가도록 밀어주는 역할만 하려 합니다. 설립자로만 남고 싶어요.”

김선희 관장은 “ 어머님은 정신도 육체도 모두 젊으세요. 배움에 대한 열정도 크시고요. 하루 업무 처리량도 무척 많아요. 제가 어머님께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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