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는 진일보… 일상의 폭력은 여전
법·제도는 진일보… 일상의 폭력은 여전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5.02.11 10:11
  • 수정 2018-02-0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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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쉼터 1인당 하루 생계비 7400원
스토킹, 경범죄로 범칙금 8만원… 2월 중 스토킹처벌법 발의

베이징+20. 올해로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유엔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는 성평등 사회를 목표로 12개 주요 분야의 행동강령을 채택해 여성운동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 역시 여성운동이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약진을 했다. 여성계의 숙원이던 호주제가 폐지됐고, 성폭력특별법과 성매매방지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성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성신문은 12개 분야별로 지난 20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서울 영등포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집창촌이 있던 지역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생긴 뒤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져 대부분 모습을 감췄으나 아직 영업 중인 곳도 적지 않다. ⓒ여성신문
서울 영등포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집창촌이 있던 지역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생긴 뒤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져 대부분 모습을 감췄으나 아직 영업 중인 곳도 적지 않다. ⓒ여성신문

“모든 사회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수입이나 신분, 문화계층에 상관없이 신체적·성적·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다.” 베이징행동강령은 여성의 낮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이자 결과임을 선언하고, 여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 대책과 피해자 지원 등을 전략 목표로 내놓았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 관련 법·제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베이징행동강령에 맞춰 여성계가 여성폭력 반대운동을 꾸준히 펼쳐온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도 더디기는 하지만 법제를 정비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갈 길은 까마득하다. 성매매 업소는 여전히 성업 중이고 가정폭력, 성폭력의 발생률과 신고율도 줄지 않고 있다.

성폭력… 외형상 피해자 지원체계 정비

현장의 체감도는 ‘글쎄’

성폭력 관련 법·제도는 지난 20년간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친고죄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공소시효의 덫에 걸려 많은 여성이 고통을 겪었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그 정점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하면 더 이상 참지 않는다. 국제사회 추세와 달리 꾸준히 성폭력 신고율이 늘어난 배경이다.

성폭력특별법은 가해자 처벌법과 피해자 보호법으로 나뉘어 2011년부터 시행됐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매매, 성폭력, 음란물 제작·배포를 엄벌하는 정책도 도입됐다. 2013년 여성계의 숙원인 친고죄가 전면 폐지됐고,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 국선변호인 제도와 진술조력인 제도도 마련됐다. 하지만 성폭력 관련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 데다 엄벌주의 경향이 집행유예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불러일으켰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나 쉼터, 원스톱센터 등이 늘어나면서 피해자 지원체계가 외형상 시스템을 갖춘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대다수의 여성인권 전문가들은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절수술 지원이 합법인데도 국가위탁기관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정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1인당 하루 생계비가 약 7400원에 불과하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부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나 기금 형식으로 편성돼 안정적인 운용이 어렵다. 이를 여성가족부 일반예산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가니 사건’에서 보듯 장애 학생 성폭력이나 아동성폭력 사건은 국민적 공분이 크다. 하지만 일상의 인권감수성은 미흡하다. 또 “여자를 잘못 건드리면 재수 없이 걸린다”는 잘못된 피해의식을 가진 남자들도 많다. 2차 피해 문제도 심각하다. 피해 생존자 중 25%가 2차 피해를 입고 있다(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 일상에서 법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세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다.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아동성폭력이나 강간치사 등 흉악한 성폭력에 관심이 쏠리면서 일상의 성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돼 범칙금 8만원만 내면 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월 중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실과 함께 스토킹범죄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성폭력 수사, 재판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른바 ‘강간 시나리오’에 벗어나 있는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꽃뱀’으로 몰리기도 한다. 검사들이 피해자를 되레 무고죄로 구속하는 사례가 왕왕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406개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와 보호시설 등 여성단체들이 1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잘못된 초동 대응으로 가정폭력 살인사건을 방조한 경찰과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406개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와 보호시설 등 여성단체들이 1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잘못된 초동 대응으로 가정폭력 살인사건을 방조한 경찰과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정폭력… 아내가 죽어야 끝나는 고통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여론

6가구 중 1가구에서 부부 간에 신체적 폭력이 일어나는 나라.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1997년 가정폭력 관련법 제정 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피해자보호명령제도,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권이 도입됐다. 2013년 가정폭력방지종합대책이 발표되고,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법·제도는 진일보했지만 경찰의 검거 건수는 줄고 있고, 가정폭력 가해자의 구속 건수도 불구속보다 크게 낮다. 검찰의 기소율은 불과 14.9%다(2012년 기준). 가정폭력의 처벌 강화는 우리 사회의 여전한 숙제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에 대한 폐지 여론도 뜨겁다.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면죄부를 주면서 가해자들이 법을 가볍게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체포우선주의 도입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현장에서 체포될 때 재범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과제에 가정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 강화가 포함됐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지난해 11월 터진 ‘안산 부인 암매장 사건’과 올 1월 일어난 ‘안산 인질 살해범 사건’은 여성과 아이들이 죽어야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가정폭력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특히 두 사건 모두 경기도 안산상록경찰서(서장 신상석 총경) 관내에서 벌어져 경찰의 무대응에 맹비난이 쏟아졌다.

 

성매매… 주택가로 파고든 변종 성매매

여성단체 “성매매 여성 처벌하지 말아야”

정부는 현재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성매매 방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성매매는 범죄’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하지만 주택가로 파고든 변종 성매매는 여전히 극성이다.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연이은 권고 사항이었다. 비범죄화란 성매매 여성에 대해 처벌을 면해주자는 주장이다. 여성단체들은 현재 성매매방지법을 전면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성매수 및 성매수 알선 등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수 및 성매수 알선 등 범죄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해 처벌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보호법은 지난해 2월 전면개정됐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폭력 관련 정책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어정쩡하게 4대악이 정해진 데다 4대악을 척결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성매매 문제만 해도 갈수록 산업화되는데 4대악에 포함되지 않아 관심권에서 멀어졌다는 지적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젠더 거버넌스, 즉 성평등 사회를 위한 정부와 여성단체와의 관계가 달라지면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성계에선 전 방위적 성매매 근절을 위한 상설 추진 기구를 요구하고 있다. 인신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인신매매방지법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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