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법 파동은 ‘중산층 증세’가 현실화 된 것
여야 합의해 소득세법 개정안 통과시켜 놓고 책임 서로 떠넘겨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

 

지난 21일 소득세 연말정산 관련 긴급 당정회의가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1일 소득세 연말정산 관련 긴급 당정회의가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연말정산 대란’을 거치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세수가 늘어나긴 하지만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목을 신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세는 아니다”라는 정부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오죽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조차 “사실상 증세냐 아니냐를 떠나서 세금을 더 내는 국민은 증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하튼 연말정산 세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증세를 하려고 했던 정부의 의도는 물거품이 됐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 빠져 무상보육 등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급쟁이 증세’를 추진하면서도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법 개정으로 세수가 9300억원 정도 늘어나는 데도 증세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심지어 연간 총 급여 5500만~7000만원 근로자들은 세법 개정에 따른 세 부담 증가가 2만~3만원 정도라는 검증되지 않은 수치까지 제시했다.

KBS가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세 부담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장인 48명의 소득과 각종 공제 내역을 지난해와 똑같이 입력해 분석했다. 그 결과 같은 조건인데도 지난해 연말정산 때보다 소득세가 평균 5%, 24만원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48명 가운데 14명은 세금이 줄었고 34명(70.8%)은 세금이 늘었다. 세금 환급이 크게 줄거나 오히려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13월의 세금 폭탄’ 비판 여론에 정부와 여당이 긴급 당정협의를 통해 보완책을 제시했다.

당정은 오는 3월 말까지 연말정산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야당과 협의해 오는 4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연말정산 보완의 세부적 내용은 자녀세액공제 금액 상향, 출생·입양세액공제 신설, 독신 근로자 표준 공제 확대, 연금보험 세액 공제율 상향 등이 포함돼 있다. 연말정산으로 인한 추가 납부액은 나눠 내도록 하고 신고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행 세법을 개정하면서 이를 올해 연말정산에도 적용키로 한 보완책은 소급입법(遡及立法)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소급입법이란 법을 만들면서 그 효력이 시간을 거슬러 적용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헌법 제13조는 2항에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참정권과 재산권에 대해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은 “아무리 시급해도 (소급입법은) 불가피하지 않으면 하면 안 된다”며 “이런 예들이 자주 등장할수록 우리 조세 제도가 불안정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거짓’ 못지않게 여야 정치권의 ‘위선’도 문제다. 지난해 1월 1일 여야는 서로 합의해 소득세법 개정안을 245 대 6의 압도적인 표로 통과시켜 놓고 이제 와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여당도 문제지만 야당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세법 파동은 한마디로 ‘중산층 증세’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런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는 데도 야당이 이를 자신의 지지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20%대 지지도에서 정체돼 있는 것이다.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정치권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무엇보다 여야가 입법의 신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야 정부의 정책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국민 세금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 여당은 무조건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지 말고 철저하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야당도 국민에게 지나친 세 부담이 예상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과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야 한다. 정부도 이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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