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말정산제도, 저출산·고령화 기조에 역행”
워킹맘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 조세 혜택 줘야

‘주경야경’ 하는 여성 회계사 일·가정 양립 어려워
“여성 후배들, 지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 꿈 이루길”

 

본격적인 연말정산이 시작되면서 이른바 ‘유리지갑’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실제 정산을 해보니 ‘13월의 보너스’로 불리던 연말정산이 세법 개정으로 인해 오히려 ‘13월의 세금 폭탄’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이번 연말정산이 끝나면 4월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오락가락하는 조세 정책에 월급쟁이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개정된 연말정산 제도로 인한 세 부담 증가를 비롯해 복지 확대로 인한 증세 논란과 유명인의 탈세 사건까지 그 어느 때보다 조세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이기화(56·사진) 다산회계법인 대표를 만났다. 34년 차 공인회계사는 현재의 조세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대표는 사무실에서 마주 앉자마자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마음이 통했나 보다”라며 기자를 반겼다. 세제에 대한 답답했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듯했다.

이 대표는 1981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삼일회계법인과 삼화회계법인을 거쳐 2002년부터 다산회계법인에 몸담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 회장(2002~2006)과 한국공인회계사회 여성 최초 감사(2012~2014)를 지내고, 현재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감사, 방송통신평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 공인회계사인 그는 논란 중인 연말정산 제도에 대해 한 마디로 “저출산·고령화 기조에 역행하는 조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 장려를 강조하면서도 조세 제도를 개편할 땐 소득세에서 출산공제 항목을 폐지하고, 다자녀 가구에 불리하게 자녀공제 제도를 개편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으며 “앞으로의 세제는 출산을 장려하고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여성친화적’ 또는 ‘가족친화적’ 세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개편된 연말정산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많습니다.

“매달 월급에서 많이 떼서 많이 돌려주던 원천징수 방식이 2012년 9월부터 적게 걷고 적게 환급하는 방식으로 달라졌어요. 게다가 2013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이 개정됐죠. 평소 월급에서 세금을 떼 가다 보니 일반 국민은 자신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에 관심을 갖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세제 개편의 영향이 올해 연말정산에서 한꺼번에 나타난 거죠. 정부가 연봉 5500만원 이상부터 세 부담이 늘어나도록 개편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도 세금 폭탄을 우려하고 있어요. 국민에게 아이를 많이 낳으라던 정부가 오히려 저출산·고령화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세제로 개편했기 때문이에요.” 

-세제 방향이 ‘저출산·고령화’ 정책 기조와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양육비 공제와 출산공제가 폐지되면서 자녀를 여럿 낳았는데도 세금을 더 내게 됐으니 납세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조세 정책도 일관되게 저출산·고령화라는 정책 기조와 발맞춰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이죠. 작년까지 자녀 한 명을 출산할 때마다 200만원이 공제됐는데 이걸 없앴으니까요. 출산공제 등 저출산 대책으로 의미가 있는 제도와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련 공제 부활을 검토하고 납세자가 조세를 납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인 납세순응비용도 완화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법 개정 당시에도 이런 문제를 예상했을 텐데요. 

“그렇죠. 그런데 조세 정책과 제도는 정치적 협상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요. 법인세의 경우에는 회사들이 다양한 단체와 협회 등을 통해 조직적 협상을 하고, 힘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세제 입안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죠. 반면, 소득세는 그러지 못해요. 소득세를 주로 내는 근로자들의 경우 납세자는 많지만, 뭉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고, 대변할 단체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법인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세제 개편이 쉽고 납세자의 의견이 잘 수렴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소득세법 개정을 발표했습니다. 또다시 바뀌는 세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연말정산 보완 대책이 ‘조삼모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요. 근로소득 원천징수세율을 다시 올리면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돈은 늘지만 매달 월급에서 떼는 세금은 그만큼 늘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조세 형평성이에요. 지금 국민들의 분노도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그대로 둔 채 일반 납세자에게만 세금을 더 걷는 정부 방식에 향하고 있거든요. 전 기업을 상대로 일하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법인세를 올렸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도 있죠. 소득세와 법인세 사이의 묘수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조세 제도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바람직합니다. 정부에서 세원 확보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당면한 복지재정 수요 등 증가한 세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인세율 인상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죠. 이와 함께 세제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세제가 효과가 있을까요.

“지난 2013년 국무총리 초청으로 여성 경제인 오찬 행사 자리에서 이런 건의를 한 적이 있어요. 중소기업이 여성 근로자를 고용할 때 출산휴가 등에 따른 대체인력 채용난과 인건비용 부담 등을 고려해서 가임기 여성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에 고용증대세액공제 같은 세액공제를 해주자고요. 나중에 가임기 여성을 특정할 수 없어 수용이 곤란하다는 회신이 왔었죠. 일·가정 양립 문제에 직면한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여성을 고용하는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요. 자녀 출산과 양육에 따른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도 확대돼야죠.”

-‘투명경영’은 우리 사회의 과제인데요, 최근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 수준은 평균 이하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이 201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은 각각 60개국 중 58위, 148개국 중 91위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어요. 회계 투명성을 평가하는 방식이 주관적인 질문 하나로 평가하다 보니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죠.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과제예요. 회계 투명성은 기업과 금융감독 당국, 회계사가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기업은 지배구조 개선, CEO 인식 개선, 회계분야 인력을 충분히 채용하고, 금융감독당국의 분식회계 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도 강화되어야 하겠고, 특히 회계사의 독립성이 지켜져야 해요. 기업과 회계사간 자율계약으로 이루어지는 현행 자유수임 제도는 회계사가 독립성을 갖고 기업을 감사하기는 사실상 힘들죠. 현재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이 감사를 지정하는 지정감사제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조금씩 확대하면 회계사의 독립성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여성 회계사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대형 회계법인 임원(파트너)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전체 회계사 중 여성이 17%가량이에요. 과거에는 여성 회계사를 그저 여성으로만 보는 성차별적인 문화도 있었어요. 한 선배는 재고 실사를 위해 연초에 회사에 찾아갔다가 ‘왜 여자가 연초부터 남의 회사에 와서 이러느냐, 재수없다’는 말을 듣고 전직했어요. 최근에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문화도 많이 사라졌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여성 합격률이 줄고 있어요. 아마도 체력적인 부담이 큰 탓 같아요. 우리나라 기업의 결산기가 대부분 12월말이라 일이 몰려 감사시즌에는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경야경’ 해야 할 정도로 야근도 많아요. 어떤 회계사는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서 아이들 저녁 식사를 차려준 다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 밤샘 근무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영업력이 남성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어요. 회계법인 파트너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이 영업력이거든요. 그래서 연차가 있는 여성 회계사들의 상당수가 영업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회계법인 내 품질관리나 교육파트에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1남1녀를 낳았는데 아이들이 어릴 땐 다행히 베이비시터를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믿고 맡기며 일에 몰입할 수 있었죠. 요즘에는 한국인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부터 슈퍼맘은 꿈조차 꾸질 않았어요.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했어요.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식은커녕 졸업식도 큰딸 고등학교 졸업식에 처음 가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함도 있지만 스스로가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멘토로서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비전은 누군가가 알려주거나 거저 주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겠죠. 하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저도 겪어보고 알았어요. 무엇보다 일을 꾸준히 한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한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지치지 않고 버텨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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