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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리 고전 문학사 속에는 백수광부의 처를 비롯하여 ‘정읍사’의

아낙네, 황진이와 허난설헌 등 괄목할 만한 여성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여성 문인의 계보는 근대에 이르는 순간 단절되어 버렸다. 근대화 시기에

정말로 여성 문인이나 예술가가 없어서였을까. 그들의 업적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기술원의 최혜실 교수는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생각의 나무, 1

만2천원)를 통해 단절된 여성 문인의 계보 잇기를 시도한다. 지은이는 특히 신여

성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에 주목한다. 이들의 자취가 흐려지고 업적이 평가절하

된 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특히 이광수와 염상섭을 필두로 한 남성 작가들

이 이들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매도했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부장주의에

젖어 있었던 당시 남성 작가들은 신여성들의 삶과 예술에 전근대적인 잣대를 들

이대면서 이들의 삶을 일탈로, 혹은 이들의 예술을 단순한 낭만적 열정의 소산으

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그런 평가들이 아직까지 주류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창녀로, 때로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정신나간 여자로, 혹은 부모와 자식도

버리는 패륜적인 여성으로 평가된 이들의 삶은 과연 정말로 그런 비난을 받을만

한 것이었을까?

일제 식민지 아래서 신여성들이 꿈꾼 사랑과 근대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는 먼저 그들의 삶을 꼼꼼히 재구성하고, 이들의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시

도한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함께 시작된 우리의 근대는 엄청난 왜곡과 혼란을 낳았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 것은 물론 사회적 절름발이 상태를 면하기 어

려웠다. 게다가 유교적 남성 우월주의가 여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여성들

은 더 심한 왜곡과 부당한 대우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그런 억압과 불평등 속에

서 이루어진 신여성들의 근대화 노력은 자기파멸 과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신여성들은...'은 우리 근대화가 낳은 새로운 성의 왜곡과 여성 탄압의

역사, 그리고 여성들의 자주적인 근대화 노력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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