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야근에 아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워킹맘
‘갑’의 횡포에 이 악물고 온갖 수모 견뎌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성차별과 성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던 차가운 갑오년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성들은 뚜벅뚜벅 나아간다. ⓒ뉴시스‧여성신문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성차별과 성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던 차가운 갑오년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성들은 뚜벅뚜벅 나아간다. ⓒ뉴시스‧여성신문

2014년 만큼 여성 노동자가 집중 조명을 받은 해도 없었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국정 과제 달성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여성에게 달렸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일·가정 양립 정책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시간제 일자리는 아직은 양질도, 반듯하지도 않은 일자리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만 가고, 심각한 ‘갑질’로 여성들은 성폭력과 폭언을 이 악물고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성들은 뚜벅뚜벅 나아간다.   

정부는 2월 여성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한다는 목적 아래 사상 처음 정부부처 합동으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두 번째 육아휴직 신청자에게 첫 달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이른바 ‘아빠의 달’을 도입해 남성의 돌봄 참여를 명문화했고, 경력단절 예방 정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기존 제도도 잘 시행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어떤 좋은 대책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여성 노동자 80%가 종사하는 중소기업에선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힘들고, 비정규직은 임신하면 퇴사해야 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불안정한 노동환경이야말로 여성이 경력단절을 겪는 진짜 원인이기 때문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남성 육아휴직자는 10년 새 22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3%에 그치고 있다. 장시간 노동 관행과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조직문화부터 바뀌어야 하지만 아직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는 ‘반듯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1년 새 15만 개가량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는 30·40대 여성을 위한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 공약과는 달리 시간제 일자리 상당수는 60세 이상으로 채워졌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시간제 근로자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고용의 질도 낮은 상황이다. 그리고 시간제 노동자 여성은 145만 명으로 남성의 두 배 이상 많다. 

올 한 해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카트’ 속 선희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계를 위해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 싱글맘 혜미, 청소원 순례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잔업을 마다하지 않던 선희는 부당 해고를 당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시위를 하며 ‘여사님’들과 연대한다. 실제 여성 노동자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드라마 ‘미생’의 선 차장은 남성 일색의 종합상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커리어우먼이자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의 귀가를 걱정해야 하는 워킹맘이었다. 신입사원 안영이도 동기 남성들보다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갖춘 이 시대 ‘알파걸’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직장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을 겪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올해도 성추행과 폭언도 이 악물고 견뎌야 했다. 지난 9월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일하던 여성 노동자는 6선 의원이자 국회의장을 지낸 가해자의 성추행에 결국 경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으로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계약직 여성 권모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면에는 이 시대를 사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회사 측의 정규직 전환 약속에 이 여성은 2년 동안 7번이나 ‘쪼개기 계약’을 했고, 중소기업 대표 및 중앙회 간부에게 여러 차례 성희롱과 성추행까지 당했다. ‘정규직 시켜주겠다’는 말만 믿고 모든 걸 견뎠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정규직 전환 불가 통보였다. 권씨의 지인은 “권씨가 한 달에 받은 월급이 136만원이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보다 18만원 정도 많은 수준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성차별과 성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던 차가운 갑오년이 지나간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시간제 일자리와 비정규직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발표가 이어진다. 내년 최저시급은 5580원으로, 주 40시간 기준으로 월 116만6220원에 불과하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또 한 해를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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