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액트 오브 킬링’
폭력이 정당화됐던 과거, 현재도 이어져

 

최근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오펜하이머 감독의 ‘엑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이다. 2012년 만들어진 이후로 국제적인 상을 30개정도 받으며 반드시 봐야할 다큐로 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 1965∼66년동안 있었던 250만 명의 양민학살에 관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는 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그 뒤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전하지 않는다. 단지 당시 대량학살에 앞장섰던 반공주의자 안와르와 그의 동료들이 그 자신들이 한 일들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오펜하이머 감독이 영화에 담았을 뿐이다. 안와르는 사람들을 칼로 죽일 때 그들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흥건해진 곳을 처리하기 힘들어 결국 밧줄을 이용해 사람을 죽였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숲에서 사람 목을 베어 죽일 때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깊은 숨을 내몰았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중국인 소녀를 강간한 이야기를 하며 천국과 같은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그는 손자들을 무릎에 앉히고 자신이 촬영한 영화를 함께 보며 설명해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혼란이 일어났다. ‘어떻게 인간이 저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떠들어댈 수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은 괴롭고 부끄럽지 않을까? 감독이 주인공 안와르에게 뭔가 속임수를 썼을까? 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호화스럽고 유쾌하게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한 일들을 저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영화를 만들 때 오펜하이머 감독은 인도네시아 대학살 시절에 죽었던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하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감독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만약 자신이 인터뷰를 한다면 공산주의자로 몰려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은 1965년 9월에 인도네시아 군 내부의 충돌로 장군들이 죽는 사건이 발단이 됐다. 그러나 훗날 33년간 독재를 한 수하르토 장군이 이끄는 군부는 공산주의자들이 영웅적인 장군들을 죽였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특히 당시 여성운동가 조직인 거와니(Gerwani)를 지목했다. 이들이 장군들을 납치해 놓고 그들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며 유혹을 하고 장군들을 거세시켜서 죽여버렸다는 내용의 흑색선전을 퍼뜨렸다. 이 자극적인 이야기는 삽시간에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공산주의자들이 비도덕적이며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그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또한 장군들의 죽음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최근까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상영돼 왔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고 불리는 것과 여성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아직도 두려워한다. 그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말이며 동시에 국가의 영웅들을 살해한 반국가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25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됐지만 그 피해자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로 여겨져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도 살인자들은 자신들이 한 일들이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노래를 부르며 그때 일들을 회상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이 죄책감으로 힘들어 했으며 그것을 이기기 위해 오히려 그 사건을 정당화하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주인공 개인에 대한 영화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구나’에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낙인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잔인한 폭력을 용인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50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말하는 자와 침묵하는 자를 통해 현재의 인도네시아가 어떤 사회인지를 전해준다. 공산주의자라는 이름만 붙으면 그들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됐던 과거가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감독은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꾹꾹 눌러 숨겨 놓았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주인공들의 허세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해자들이 더욱 큰소리를 낼 때 관객들은 소리 없는 피해자들의 소리를 더욱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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