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우모 조교 성희롱 판결 20년 후
“조직 자율성 강조하나 따를 매뉴얼조차 없어”
“군사법원은 재판 과정 비공개에 무마되기 일쑤”
“모호한 법 개념 재정비 해야”

 

성희롱 가해자 처벌 중심의 제도에서 이제는 피해자 보호 중심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젠더법학회가 성희롱의 법적 규제와 예방 대책 포럼을 열고 논의했다. ⓒ여성신문
성희롱 가해자 처벌 중심의 제도에서 이제는 피해자 보호 중심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젠더법학회가 성희롱의 법적 규제와 예방 대책 포럼을 열고 논의했다. ⓒ여성신문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판결 이후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올해에도 대학 내 성희롱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성희롱의 법적 규제와 예방 체계에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볼 때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젠더법학회는 12월 20일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역사관에서 학술대회 겸 포럼을 열고 성희롱의 법적 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1994년 4월 서울대 우 조교 사건 판결로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란 용어는 널리 알려졌으며 여성계의 꾸준한 노력으로 1995년 12월 성희롱 방지를 처음으로 법에서 명시, ‘남녀차별금지법’과 ‘여성발전기본법’ 등을 통해 직장과 대학에서 성희롱을 규제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은 인권위가 출범한 2001년 이래로 계속 증가 추세다. 직장 내 성희롱은 사업주가 가해자를 제재하는 간접적 제재 방식으로 사업주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학도 최근엔 성희롱 상담기구를 설치하는 비율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립된 성희롱·성폭력 상담소를 두는 경우는 2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으론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건 처리 대부분이 가해자 징계에 맞춰져 있고 피해자 보호에 대한 관심은 낮기 때문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해자나 피해자 중 한 명의 사표를 받고 끝내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며 “가해자가 징계 조치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보호를 받으면서 피해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직장 내 전문 상담기구를 설치한 뒤 어떤 절차로 이뤄져야 하는지 매뉴얼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상 가해자에 대한 징계 규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 관련 매뉴얼도 없어 고용노동부에 성희롱 사건이 진정돼도 징계 수준은 규제할 수 없다. 조직 내 고충처리상담관제도 역시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 고충처리상담관을 같은 조직 동료가 맡고 상담관조차 내부 조직원의 평판이나 인맥 등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내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경우 군 지휘관들이 여군을 바라보는 태도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희롱 문제가 제기되면 “그때 불편했으면 얘기하지 그랬느냐”라고 반응한다며 실제 재판 과정도 비공개돼 무마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최근 17사단장이 여성 하사관 성추행으로 긴급 체포된 사건에 대해 “녹음을 했다는 이유로 꽃뱀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더라. 저 같아도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진영 대전지방법원 판사는 “민간법원이 군사법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방의 작은 군사법원은 판사와 검찰관, 국선변호 장교가 같은 건물, 바로 옆방에서 근무하고 매일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자기도 한다”며 “각각 독립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과연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지 굉장히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엘림 젠더법학회장은 법에서부터 성희롱 개념을 다양하고 모호하게 정의 내린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성발전기본법’ ‘양성평등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교해 모호한 표현으로 실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성희롱을 포섭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현행법상 법적 개념과 성립 요건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성희롱과 성추행이 다른 점을 물어보면 성희롱은 경미한 것으로 답한다. 또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의가 없었다고 반응한다”며 “성희롱은 성적 성질의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고 그에 반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행위다.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은 성희롱 예방 교육이 법제화로 의무라서 잘 되는 게 아니라 외곽 통제장치가 강해 이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 기업들이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형식”이라며 사법적인 강제만이 아니라 차별시정기구 등 시민사회가 적절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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