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록 풍양 조씨, 나의시간
'자기록' 풍양 조씨, 나의시간

개인적으로 사용을 꺼리는 단어 중 하나가 ‘미망인’(未亡人)이다. 각종 언론은 고상한 척 미망인이라고 쓰지만,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남편이 죽고 홀로 된 여자’를 이르는 관용어처럼 쓰이지만, 이 단어가 여전히 사용되는 저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면 ‘아직 따라 죽지 못한’ 것을 타박하는 심사도 분명 존재한다. 여전히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인식이 배어 있는 단어가 바로 ‘미망인’이다.

‘자기록’을 쓴 풍양 조씨는 1772년 서울에서 무반(武班)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15살에 시집갔지만 20살에 남편을 잃었다. 18세기 조선은 새로운 사상이 꿈틀대던 시기였지만, 여성 혼자 살기에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그이는 당시 관습대로 남편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주위에서 만류했다. 스스로도 마음을 고쳐먹고 살기로 했다. 그러고는 남편이 죽은 이듬해인 1792년부터 자신의 지난 삶과 남편의 발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했다. 그 책이 바로 ‘자기록’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의 ‘자기록’은 한 여인의 절절한 삶의 풍경을 묘사한다. 풍양 조씨는 차마 죽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 목숨을 끊어 여러 곳에 불효를 하는 것과 참담한 정경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수 없었다. … 모진 목숨을 기꺼이 받아들일지언정 다시 양가 부모님에게 참혹한 슬픔을 더하랴 하여 금석같이 굳게 정하였던 마음을 문득 고쳐 스스로 살기를 정하였다.” 그러나 백년해로 하기로 손 모아 약속했던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한편에 남아 있었다. “불쌍하고 원망스러운 남편 생각에 간담이 미어지고 애 스러지는 듯하였다.”

풍양 조씨는 남편을 일으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자식의 병이 중했음에도 시댁 어른들은 “비록 하늘의 이치가 순탄치 못하나 선조의 공덕과 두 어른의 겸손하고 검소한 성심이 있는데 이제 와 자손을 어찌 하늘이 차마 앗아가겠는가”라고 말할 뿐, 스스로 낫기만을 기다렸다. 궁여지책으로 남편에게 처가행을 권했고, 다행히 “옮겨오던 날 저녁부터 자심하던 복통이 줄고 구역질도 없으며 설사 횟수도 잠깐 덜었으니” 다행 중 다행이었다.

아내의 곡진한 간병에도 남편은 홀연 세상을 떠났고, 풍양 조씨는 홀로 남겨졌다. 홀로 남겨진 삶은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갈수록 세월은 뒤 잇기를 빨리 하여 어느덧 해를 바꾸니 자취는 해가 지나 옛일이 되었으나 작년 봄 물색은 눈앞에 펼쳐져 작년 오늘과 내일이 다 그날 같다.” 인생사 무상함을 토해내는 그이의 한숨 또한 처절하다. “잠깐 머물다 가는 세상에 사람의 수명은 백세가 되지 않으니 나의 세상이 또 얼마리오.”

‘자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열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해준다. 죽은 남편을 따라 죽어야만 하는 오랜 관습 뒤에 숨은 정조(貞操) 이데올로기, 그것을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 등 갖가지 면모를 한 여인의 글을 통해 조곤조곤 전해준다. ‘자기록’은 삶과 죽음에 관한 애절한 보고서이자, 애통함과 비절함을 안고 한평생을 버텨낸 한 여인이 눈물로 쓴 고백록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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