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설립 32년 만에 나온 첫 여성 이사장
여성임원·고위직 적극 발탁…임원 60%가 여성
모든 직원의 행복과 국가유공자 지원에 전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아직도 부족해요. 더 많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죠.”

김옥이(67·사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 이사장에게 취임 이후 확 늘어난 여성 인재 등용에 대해 내부 불만은 없느냐고 묻자, “의사결정직에 여성이 늘어나야 조직 문화가 달라진다”며 이같이 대답했다.

김 이사장이 취임한 지난해 11월 27일 이후부터 1년간 상임이사 5명 중 여성을 3명으로 늘렸고, 여성 관리자 비율도 30%로 끌어올렸다. 인재개발팀장·총무재무팀장 등 주요 보직에 모두 여성을 앉히는 파격 인사로도 주목받았다. 이렇듯 여성 관리자와 임원이 늘어났음에도 김 이사장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성 이사장이 오고 난 후 여성 임원과 여성 관리자가 늘어나면서 보훈공단이 ‘여성 천하’가 됐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있어요. 저는 그 사람에게 그럼 수십 년 동안 ‘남성 천하’였지 않냐고 말했죠. 보훈공단은 전체 직원 5000여 명 중 여성이 68%에 이를 정도로 여성인력 비율이 높은 기관이에요. 보훈병원 5곳과 요양원 5곳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중에 여성이 많거든요. 하지만 사무직 중에 1급에 오른 여성은 한 명도 없어요. 2급에 고작 2명, 3급에는 딱 1명밖에 없어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이라도 여성 인재들이 충분히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죠. 시간이 부족해요.” 

이름 앞에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여성 리더다운 생각이었다. 김 이사장이 이토록 여성인재 개발과 활용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유능한 여성인력이 외부 요인 때문에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 에서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섬김경영·책임경영·투명경영’ 강조

김 이사장은 여군사관후보생 19기로 임관해 1988년 당시 여군으로는 최고 계급인 대령 진급과 함께 제15대 여군단장을 지냈다. 이후 18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최초의 여성 이사장에 올랐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선배로서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늘 골몰했다. 그래서 여군 8000명 시대의 초석이 된 여군 장교 인사 개선을 군에 제안했고, 한나라당 여성중앙위원장 시절에는 선출직 여성후보 30% 공천할당제 도입을 주장했다. 

보훈공단은 1981년 11월 설립된 국가보훈처 산하 기관으로 서울 중앙보훈병원을 비롯해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 5개 보훈병원과 5개 보훈요양원, 보훈재활체육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창립 33주년을 맞은 올해 보훈공단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2월 18일 강원도 원주혁신도시로 기관을 이전하는 외부 변화와 함께 김 이사장이 핵심 경영이념으로 세운 ‘섬김경영·책임경영·투명경영’을 바탕으로 5000명 임직원이 공공기관 방만 경영 정상화에 전력을 다했다. 부채비율을 64%로 낮춰 공공기관 평균 부채비율인 232%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제안한 과제 등 총 60개 과제를 선정해 가급적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조직 개혁을 유도했다. 김 이사장은 매월 개선 추진 상황을 파악하고, 업무 진행도 사내 게시판을 통해 수시로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 결과 6년 연속으로 고객만족도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한편,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고, 이런 조직 분위기가 보훈 대상자들을 위한 보다 질 높은 ‘맞춤형 의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직결된다는 김 이사장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을 돌보고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죠.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도 ‘명예로운 보훈’이에요. 저희도 이런 정신으로 유공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친화제도를 확산하고 의료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제도와 성과급 제도를 만들고, 최신 의료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모두 유공자들이 보다 좋은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일환이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매년 10월 4일을 ‘보훈병원 간호부 1004DAY(천사데이)’로 정해 간호의 사명과 사랑을 실천하는 ‘간호천사’를 선정하고, 내원고객에게 건강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매년 10월 4일을 ‘보훈병원 간호부 1004DAY(천사데이)’로 정해 간호의 사명과 사랑을 실천하는 ‘간호천사’를 선정하고, 내원고객에게 건강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여성은 버티겠다는 강한 의지 가져야” 

보훈공단은 고령의 국가 유공자가 자신이 살아온 집과 공동체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개선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복권기금 지원으로 보훈가족의 주거복지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나라사랑 행복한 집’ 사업은 민·관·군 등 여러 협력 기관이 참여해 보다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고 있다. 12월 10일 현재 1740호가 지원을 받았다. 김 이사장은 “‘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는 실버세대의 의견이 반영된 예방적 차원의 노인복지인 재가보호시스템(Aging in Place)”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1년간 전국 보훈병원과 요양원 등을 살펴보는 현장 점검에 적극 나섰다. 지난 1년간 이동한 거리를 따지면 약 1만㎞에 달할 정도로 광폭 행보였다. 평균 병원 1곳에 4차례씩 방문했을 정도다. 현장 점검은 병원 시설을 살펴보고, 임원들의 보고를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간담회를 열어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에 공을 쏟았다. 그 자리에서 나온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메모하고 담당자에게 문제 해결 상황에 대해 확인한다. 한 번 지시한 사항은 반드시 확인하고 몸에 밴 딱딱한 말투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선 김 이사장에 대해 “무섭다”는 말도 돌지만, “엄마 같다”는 정반대의 평가도 나온다고 한다.  

“저를 포함해 많은 여성 리더들이 일은 정확하고 엄격하게 하지만, 직원들을 챙길 때는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 같아요. 매달 한 차례씩 제 방(이사장실)에서 직원들 생일파티를 열었더니 처음엔 직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사실 군에서는 직원들 생일을 챙기는 게 당연한 일인데,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아 저도 놀랐죠.”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로 기관이 이전하면서 서울에서 원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안전과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항상 비상식량과 물을 구비하는 일도 직접 챙겼다. 이밖에도 매년 10월 4일을 ‘보훈병원 간호부 1004DAY(천사데이)’로 지정해 간호의 사명과 사랑을 실천하는 ‘간호천사’를 선정하고, 내원 고객에게 건강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직원간담회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일·가정 양립이 중요하지만, 일할 땐 일에 몰입하고, 집에서는 가정에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 

“여성들은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등 1인 3~4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벽에 부닥치곤 하죠. 하지만 힘든 시기는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버티면 기회는 올 거예요.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참여해야죠.” 

올해 보훈공단을 이끈 김 이사장은 내년에도 통합복지 의료서비스를 비롯해 찾아가는 의료, 재활을 활성화하는 데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유공자들이 ‘내 생이 명예로웠다,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보훈공단이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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